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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여기까지?
내가 가르치는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은,그저 하루를 버티기 위해 학교에 온다.수업 시간 내내 엎드려 있지만,눈을 감았을 뿐 잠들지 않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애쓰고 있다는 걸 알기에,나는 차마 일어나라고 말하지 못한다.잘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을 버릴 것.아무리 두드려도 답하지 않는 아이에게너무 마음 쓰지 말 것.내가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는 오만을 지울 것.무엇보다,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내려놓을 것.학교에서 그저 버티느라 애쓰는 건,아이뿐만은 아니다.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서우리는 각자의 몫만큼 애쓰며,조용히 오늘을 버텨내고 있다.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오후 4시에 건네는 한 마디 인사뿐이다.애썼다. 안녕.마치, 꽤 괜찮은 하루였던 것처럼, 우리는 공범이 된다.처음이..
꼴찌에게 등산이 힘든 이유는, 등산의 타이밍이 꼴찌에게만 유독 가혹하기 때문이다. 먼저 도착한 이들의 기다림은, 꼴찌가 도착하는 순간 종료된다. 도착하면 떠나고, 또 도착하면 떠나니, 결국 단 한 번도 쉬지 못한 채 정상까지 오르게 된다. 꼴찌에게 유일한 휴식법은, 제발 나를 버려달라고 부탁하는 것뿐이다. 교사가 되어서 이런 가혹한 역할을 아이에게 줄 순 없으므로, 오늘의 꼴찌는 내가 되기로 한다. (읭?) 아니, 나만 유독 저질 체력처럼 보였던 건 어젯밤을 거의 새다시피 했기 때문이라고… 그냥 그렇게 속편히 생각하기로 한다.몇 주 전부터 산행 체험의 고귀한 의미를 아이들에게 설파했던 나는, 적당히 차가운 공기를 한껏 들이키며 수다와 함께 걷는 장면을 상상했던 나는… 그래서 오늘이 좀 서운했다. 목표만 ..
시험기간이라고 복도 모니터에 이런 귀여운 사진이 떠 있었다. 중간고사 응시 유의사항을 담은 평가부 공지의 마지막 페이지였다. 잠깐 지나간 사진이 너무 귀여워서 저걸 찍겠다고 한참을 서 있었다. (정작 아이들은 별로 관심도 없어보였지만.. )하루에 길어야 다섯시간을 자면서 낮시간을 버텨낸지 한달이 넘어가고 있다. 쪽잠을 자가며 커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는 듯,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대체 뭐하느라 이러고 사는 건지 잘 모르겠다. 퇴근하면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의지로 노트북도 두고 나왔지만 오늘도 결국 집에와서 아이패드를 꺼냈다. 남은 한 달은, 하루 최소 다섯시간은 챙겨 자야겠다.
지난 주에 dje메신저로 온 사진이다. 몇개 반을 돌며 학생들이 이 사진을 전자칠판 배경화면으로 깔아두고 갔다고 한다. 지난 3월에는 도서관 컴퓨터 바탕화면에 고 노무현대통령의 사진을 깔아두고 간 일도 있었다. 이 아이들은 겨우 07, 08, 09년생이다. 그러니 고 노무현대통령이 재임하던 기간엔 존재하지 않았고, 생을 마감하던 순간에도 존재하지 않았거나 겨우 갓난아기였던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이 대체 뭘 안다고 이렇게까지 고인을 조롱의 소재로 소모하는 건지, 처음엔 기겁을 했다가 나중엔 화가 났지만, 이제는 받아들였다. 아이들에게는 의도라는 게 없었다는 걸. 생각이 없는 줄은 알았지만 나의 상상보다 더 생각이란 게 없었던 아이들은, 고인의 존엄성조차 그저 밈으로 소모하는 중이었다. 고인이 어떤 사람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