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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여기까지?

2017년부터 종례신문을 썼다. 컬러 프린터가 본부교무실에만 딱 한 대만 있던 신탄진고 시절에는 매주 금요일 아침마다 pdf파일을 메신저로 보내고 본부에 가서 찾아와야 했지만, 아이들과의 일상을 소소하게 기록하는 즐거움에 귀찮다는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그 당시 종례신문은 반의 모든 아이들(그래봐야 스물 한 명?)에게 매주 한 장씩 출력본으로 나누어주는 방식으로 발행을 했는데, 종례신문 마지막에 ‘나의 한 주 기록하기’칸에 아이들이 한두줄 정도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도록 했었다. 일년 동안 발행하면 40~50부 정도가 되는데, 이걸 다시 모아서 연말에 스프링으로 제본을 해주면서 아이들이 기록한 한 주의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2019년 학교를 옮기면서도 당연하게, 담임반 아이들과 종..

나는 올해 스물 다섯 명의 고 2 아이들 담임을 맡았다. 수업 시수가 두 배 이상 늘었고, 교양과목인 논리학까지, 두 개 학년을 가르쳐야 한다. 개학 후 첫 일주일, 쏟아지는 메세지를 하나씩 처리하며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고교학점제가 들어오며 일반고는 꽤 다양한 선택과목을 제공하고 있다. 시간표를 짜는 일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반편성도 선택과목을 기준으로 여러 세트가 나올 수 밖에 없다. A세트 선택을 기준으로 2~3개 반을 정하고, B세트 선택을 기준으로 2~3개 반을 정하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미적분 선택반처럼 이과성향 아이들이 모두 모여있는 반도 있지만, 일본어 선택반처럼 문이과 구분이 특별히 없는 반도 존재한다. 내가 맡은 반은 모두 일본어를 선택한 아이들이고, 그중 일부..

차 없는 이틀 동안 열심히 걸었다. 차가 없으니 걸을 수 밖에. 참 예쁜 동네구나 생각하며 지나던 길을 두 발로 디디며 걸어보니, 한달을 살았어도 미처 느끼지 못했던 소소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정도가 적당한 전개일텐데, 솔직히 차로 다니는 길이 예쁘지 걸으며 구경하려니 다리가 아팠다 -_- (낭만따위) 물론 뚜벅이 여행의 장점도 꽤 있었는데,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소화가 되니 때되면 배고프고 뭐든 맛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맛집만 찾아다니며 먹어놓고 ‘뭐든’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건 좀 양심 없는 것 같지만..) 위미에 온 초반부터 한번은 가보자 벼르던 수와래 빵집에서 먹은 소금빵도 그 중 하나. 흔한 소금빵이지만 여기는 제주니까, 제주감성 가득한 가게에서 어렵게 맞춘 영업시간에 구매..

제주의 흔한 바람소리에 새벽부터 눈이 번쩍 떠졌다. 더 잘까 뒤척이다 포기하고 나온 시각이 여섯시? 오늘따라 잠이 안 오네 생각하며 아이패드를 열어 오늘의 여행지를 확인하는 나. 원래 계획을 세우는 인간이 아닌데 집에 갈 날이 다가오니 남은 날은 최대한 알차게 보내야겠단 생각에 계획이란 걸 세워보게 되더라. 더구나 오늘은 남은 날 중 하루 종일 비예보가 있는 유일한 날이었다. 비오는 날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세운 오늘의 계획은 제주한란전시관, 카페 오렌정원, 그리고 점심으로 돈내코 손두부를 먹는 것이었다. 첫번째 난관. 제주한란전시관은 수요일에 휴무라고 한다. 그에 맞춰 카페 오렌정원도 오늘 쉬는 날이었다. 데스크앤테이블에 가서 가지튀김을 먹고 동백화방을 한번 더 찍자는 대안이 떠올랐지만 두 곳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