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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여기까지?
주말 저녁에 남편과 예능을 보며 낄낄대길 좋아하는 내가 요즘 푹 빠진 프로그램은, 전 국민의 주택 로망에 불을 지폈다는 다. TV 속 집들이 동화 같은 거야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매력은 그 집들이 매우 실현 가능한 가격으로 소개된다는 데 있다. 아파트 값이랑 별 차이가 없거나 더 저렴한 집들이 어쩜 그렇게 넓은 마당에 다락에 테라스까지 품고 있는 건지. 그야말로 갬성 넘치는 집들을 바라보며 주택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단순히 프로그램이 심어준 판타지 탓인지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 탓인지 잘 모르겠다.어릴 때 내가 살던 집은 큰 나무 대문이 있는 2층 주택이었다. 태어나긴 포항에서 태어났다는데 백일 전에 대구로 이사 왔다니 당연히 포항의 기억이 전혀 없고, 처음 대..

- 오늘은 어땠어? 저녁 식탁에서 던진 일상의 질문에 갑자기 목소리가 잠기는 둘째. - 오늘은 슬픈 일이 있었어. 받아쓰기를 20점 맞아버렸어. 이미 눈이 벌게져서 금방이라도 툭 터질 거 같은 표정을 보며 살짝 당황했지만 애써 꾹 눌러 담고 말했다. - 어려웠어? - 아니 선생님이 너무 빨리 불러서 다 못 썼어. - ... 괜찮아! 다음엔 좀 더 빨리 쓰는 연습도 해 보자. 더 연습하면 돼. 아이고 받아쓰기가 뭐라고, 근데 그게 그렇게 어렵나, 그래도 한동안 잘하더니 등교 수업이 오랜만이라 긴장했나, 얜 어떻게 받아쓰기도 이렇게 힘드냐 20점이라니.. 등등의 생각은 다 속으로만 했다. 난 둘째 엄마니까. 괜찮단 엄마 말에 살짝 마음이 녹은 녀석이 한 마디 덧붙인다. - 엄마 근데 왜 20점인지 모르겠어...
어릴적 엄마는 두살 터울, 실제로는 20개월 차이나는 오빠와 나를 두고 '뭐든 똑같이'를 시전하려고 항상 애썼다. 그 시절 극장에서 개봉했던 '영구와 땡칠이' 같은 영화를 보면 심형래가 웃고 있는 책받침을 주곤 했는데, 그럴 때에도 '연년생이라 싸우니까' 꼭 두 개를 줘야한다고 덧붙여 꼭 챙겨 받아오곤 했다. 오빠보다 뭐든 한 치도 덜 받고 싶지 않았던 나는 엄마의 그런 대화를 딱히 부끄러워했던 것 같지 않다. 가끔 오빠와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같은 사람 이야기 맞는거야? 싶을 만큼 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닫고 깜짝 놀란다. 소세지 하나도 반을 딱 잘라 나눠주던 엄마는, 당신에 대한 기억 조각도 딱 절반을 잘라 서로 다른 조각을 오빠와 나에게 나누어 주고 간 걸까? 그럼 우리 둘의 기억..
3월의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 교육부는 휴업 연장과 함께 온라인 개학이라는 사상 초유의 결정을 발표했다. 태블릿 PC와 웹캠 가격이 하루 사이에 20~30퍼센트 올랐고, 메가스터디와 강남에듀 같은 온라인 교육 컨텐츠의 주가가 급상승했다. 맞벌이 부부는 어떻게 하냐, 온라인 수업이면 라이브로 진행하느냐, 가정에 PC가 한 대뿐인데 출석 체크는 어찌 하느냐와 같은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이탈리아에서는 어제까지 누적 사망자가 1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숫자의 집단 죽음이라고도 한다. 조기를 게양하며 묵념하는 이탈리아 시민들의 소식을 TV로 전해 들으며 세계적인 감염병 대 유행의 상황, 팬데믹을 실감한다. 모니터 앞에서 휴업의 하루를 보내는 우리는 느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