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282)
... 어쩌다 여기까지?
원래는 제주에 가려고 했다. 3월 4일부터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 잔 적 없이 논문을 읽고 썼으니 한 타임 쉴 때가 되었다. 하지만 여권을 갱신했으니까. 그리고 여권 갱신일에 외출했다가 망했으니까. 새로 만든 여권을 들고 다시 일본으로 외출을 해보자, 가 되어버렸다. [의식의 흐름]- 제주 왕복하면 22만원? 뎀. 이 돈 주고 제주는 아니지.- 청주에서 갈 수 있는 곳이 제주 말고 뭐가 있지? - 삿포로, 도쿄, 오사카, 오키나와, 타이페이, 클락, 다낭.. - 주말에 갈만한 곳 중에 안 가본 가까운 데가 나고야뿐이잖아. 이렇게, 나의 행선지는 갑자기 나고야가 되었다. 조금 문제라면, 티케팅할 때는 정시퇴근 후 17:40 청주발 비행기 탑승이 무리인 걸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과, 이걸 인지하고 3시 조퇴를..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질러서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건,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잘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났다.조금이라도 나은 모습을 보고 싶어서,힘겹게 소리를 내며 굳이 가르치려 들었었다.사실 그땐 몰랐다.더는 어떤 장면에서도 화가 나지 않는 그 순간이나에게도 찾아올 거라는 것을.화를 내는 일에도 꽤 많은 열정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학기초부터 미뤄온 개인상담을 시작했다. 이 좋은 봄날, 싱그러운 열일곱 아이와 마주앉아, 공부 열심히 해라 따위의 말을 건넨다. 겨우 이 정도 말이나 하려고 그 길을 돌아 교사가 된 건 아니었는데. 마음이 더는 차오르지 않아, 가진 단어들을 잃어버렸다. 기대없이 나를 보는 마냥 예쁜 눈빛에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들켜버린..
어제는 스승의 날이었다.떠들썩한 인사가 어색한 나로선, 담임이 아니었던 지난 몇 해가 차라리 편했는데, 올핸 담임이라 피할 수 없었다. 진심으로 하루를 접어 없애버리고 싶다는 마음뿐으로 출근을 하고 수업을 한다. 출근을 안 할 방법도, 수업을 안 할 방법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 아이들이 가져온 카네이션은 받자니 민망하고, 받지 않자니 미안했다. 결국 제대로된 인사 한번을 못 하고, 도망치듯 퇴근을 했다. 아이들이라고 만난 지 백일도 채 안 된 담임이 그렇게 고마울 리는 없을 거다. 스승의 날이니, 옆반이 한다니, 으레 그렇듯 준비했을 걸 안다. 하지만 나에겐, 그 감사하단 상투적 말조차 너무 버겁다. 온 마음을 다해 교단을 지키는 사람도 많은데, 내가 뭐라고 그들과 나란히 인사를 받나. 이 자리는 ..
2015년에 만든 나의 여권이 오는 10월에 만료된다. 겨울방학 때 어디라도 튀려면 여권 갱신이 시급해서 숙제처럼 미루던 일을 해치운 게 지난주였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여권이 나왔으니 찾아가라는 문자를 받았다. 시내 한복판 학교의 빅장점 중 하나는 주요 관공서가 죄다 슬세권이라는 점이다. (물론 나는 킥보드 타고 감...) 3교시 끝나자마자 깔끔하게 외출을 달고 나와 시청으로 날아가는데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이 너무 좋아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학교로 다시 복귀해야 한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완벽한 봄날의 외출이었다. 어차피 곧 점심시간이라 넉넉히 여유를 잡았고, 마침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니 혼자 남편의 생일파티를 해보기로 한다. (이 남자는 올해도 본인 생일에 해외 출장 중..)밥먹고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