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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여기까지?
나는 올해 스물 다섯 명의 고 2 아이들 담임을 맡았다. 수업 시수가 두 배 이상 늘었고, 교양과목인 논리학까지, 두 개 학년을 가르쳐야 한다. 개학 후 첫 일주일, 쏟아지는 메세지를 하나씩 처리하며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고교학점제가 들어오며 일반고는 꽤 다양한 선택과목을 제공하고 있다. 시간표를 짜는 일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반편성도 선택과목을 기준으로 여러 세트가 나올 수 밖에 없다. A세트 선택을 기준으로 2~3개 반을 정하고, B세트 선택을 기준으로 2~3개 반을 정하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미적분 선택반처럼 이과성향 아이들이 모두 모여있는 반도 있지만, 일본어 선택반처럼 문이과 구분이 특별히 없는 반도 존재한다. 내가 맡은 반은 모두 일본어를 선택한 아이들이고, 그중 일부..
차 없는 이틀 동안 열심히 걸었다. 차가 없으니 걸을 수 밖에. 참 예쁜 동네구나 생각하며 지나던 길을 두 발로 디디며 걸어보니, 한달을 살았어도 미처 느끼지 못했던 소소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정도가 적당한 전개일텐데, 솔직히 차로 다니는 길이 예쁘지 걸으며 구경하려니 다리가 아팠다 -_- (낭만따위) 물론 뚜벅이 여행의 장점도 꽤 있었는데,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소화가 되니 때되면 배고프고 뭐든 맛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맛집만 찾아다니며 먹어놓고 ‘뭐든’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건 좀 양심 없는 것 같지만..) 위미에 온 초반부터 한번은 가보자 벼르던 수와래 빵집에서 먹은 소금빵도 그 중 하나. 흔한 소금빵이지만 여기는 제주니까, 제주감성 가득한 가게에서 어렵게 맞춘 영업시간에 구매..
제주의 흔한 바람소리에 새벽부터 눈이 번쩍 떠졌다. 더 잘까 뒤척이다 포기하고 나온 시각이 여섯시? 오늘따라 잠이 안 오네 생각하며 아이패드를 열어 오늘의 여행지를 확인하는 나. 원래 계획을 세우는 인간이 아닌데 집에 갈 날이 다가오니 남은 날은 최대한 알차게 보내야겠단 생각에 계획이란 걸 세워보게 되더라. 더구나 오늘은 남은 날 중 하루 종일 비예보가 있는 유일한 날이었다. 비오는 날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세운 오늘의 계획은 제주한란전시관, 카페 오렌정원, 그리고 점심으로 돈내코 손두부를 먹는 것이었다. 첫번째 난관. 제주한란전시관은 수요일에 휴무라고 한다. 그에 맞춰 카페 오렌정원도 오늘 쉬는 날이었다. 데스크앤테이블에 가서 가지튀김을 먹고 동백화방을 한번 더 찍자는 대안이 떠올랐지만 두 곳 모두..
새벽부터 심상치 않던 바람이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잦아들 줄 모른다. 잠깐 점심 먹으러 나가는데도 큰 용기가 필요했던 오늘, 하루만 집 밖으로 안 나가면 어떻겠냐는 둘째님 말에 ‘그럼 우리 각자 놀아볼까?’를 시전한다. (보름을 붙어 다녔으니 하루쯤 따로 놀 때가 되었다. 난방과 와파가 빵빵한 집에 세 시간 정도 혼자 두는 건 아동 학대 아니고 아동 복지임..) 처음엔 재니가 절대 가지 않을 곳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딱히 그런 곳이 어딘지 모르겠다. 어제 서쪽으론 다녀왔으니 오늘은 동쪽을 찍어볼까, 진짜 안 가본 데 어디 없나, 구글 맵을 이리 저리 돌려보다가 ‘환해장성’이란 말에 꽂힌다. 제주에 이런 곳이 있었나, 바로 맵을 찍고 달려본다. 워셔액을 뿌려도 내 차에 한 방울도 남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