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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여기까지?

원래는 제주에 가려고 했다. 3월 4일부터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 잔 적 없이 논문을 읽고 썼으니 한 타임 쉴 때가 되었다. 하지만 여권을 갱신했으니까. 그리고 여권 갱신일에 외출했다가 망했으니까. 새로 만든 여권을 들고 다시 일본으로 외출을 해보자, 가 되어버렸다. [의식의 흐름]- 제주 왕복하면 22만원? 뎀. 이 돈 주고 제주는 아니지.- 청주에서 갈 수 있는 곳이 제주 말고 뭐가 있지? - 삿포로, 도쿄, 오사카, 오키나와, 타이페이, 클락, 다낭.. - 주말에 갈만한 곳 중에 안 가본 가까운 데가 나고야뿐이잖아. 이렇게, 나의 행선지는 갑자기 나고야가 되었다. 조금 문제라면, 티케팅할 때는 정시퇴근 후 17:40 청주발 비행기 탑승이 무리인 걸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과, 이걸 인지하고 3시 조퇴를..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질러서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건,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잘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났다.조금이라도 나은 모습을 보고 싶어서,힘겹게 소리를 내며 굳이 가르치려 들었었다.사실 그땐 몰랐다.더는 어떤 장면에서도 화가 나지 않는 그 순간이나에게도 찾아올 거라는 것을.화를 내는 일에도 꽤 많은 열정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학기초부터 미뤄온 개인상담을 시작했다. 이 좋은 봄날, 싱그러운 열일곱 아이와 마주앉아, 공부 열심히 해라 따위의 말을 건넨다. 겨우 이 정도 말이나 하려고 그 길을 돌아 교사가 된 건 아니었는데. 마음이 더는 차오르지 않아, 가진 단어들을 잃어버렸다. 기대없이 나를 보는 마냥 예쁜 눈빛에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들켜버린..

어제는 스승의 날이었다.떠들썩한 인사가 어색한 나로선, 담임이 아니었던 지난 몇 해가 차라리 편했는데, 올핸 담임이라 피할 수 없었다. 진심으로 하루를 접어 없애버리고 싶다는 마음뿐으로 출근을 하고 수업을 한다. 출근을 안 할 방법도, 수업을 안 할 방법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 아이들이 가져온 카네이션은 받자니 민망하고, 받지 않자니 미안했다. 결국 제대로된 인사 한번을 못 하고, 도망치듯 퇴근을 했다. 아이들이라고 만난 지 백일도 채 안 된 담임이 그렇게 고마울 리는 없을 거다. 스승의 날이니, 옆반이 한다니, 으레 그렇듯 준비했을 걸 안다. 하지만 나에겐, 그 감사하단 상투적 말조차 너무 버겁다. 온 마음을 다해 교단을 지키는 사람도 많은데, 내가 뭐라고 그들과 나란히 인사를 받나. 이 자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