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는 올해 스물 다섯 명의 고 2 아이들 담임을 맡았다. 수업 시수가 두 배 이상 늘었고, 교양과목인 논리학까지, 두 개 학년을 가르쳐야 한다. 개학 후 첫 일주일, 쏟아지는 메세지를 하나씩 처리하며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고교학점제가 들어오며 일반고는 꽤 다양한 선택과목을 제공하고 있다. 시간표를 짜는 일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반편성도 선택과목을 기준으로 여러 세트가 나올 수 밖에 없다. A세트 선택을 기준으로 2~3개 반을 정하고, B세트 선택을 기준으로 2~3개 반을 정하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미적분 선택반처럼 이과성향 아이들이 모두 모여있는 반도 있지만, 일본어 선택반처럼 문이과 구분이 특별히 없는 반도 존재한다. 내가 맡은 반은 모두 일본어를 선택한 아이들이고, 그중 일부는 미적분을, 또 다른 일부는 사회문화를 택했다. 특수교육대상자도 있다. 일명, 통합학급이다.
상담을 하면서 이과반에 가고 싶었는데 혼합반에 편성되어 수업 분위기가 좋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말을 들었다. 적성에 따라 택하는 선택과목이라지만, 사실상 수학에 자신 없는 아이들이 문과로 쏠리는 경향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과반이 수업 분위기가 좋은 것은 사실이다. 아니, 수업분위기라기 보다 면학분위기라고 표현하는게 옳을 것이다. 수업 분위기는 어차피 교사의 몫이지 학생 구성의 몫은 아니니까. 쉬는시간, 점심시간, 공강시간 등,, 아이들끼리 함께하는 교육과정 밖의 꽤 많은 시간을 좌우하는 것은 구성원의 성향이다.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 입장에선 아쉽단 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같은 맥락에서 한 반에 속한 특교자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곱지만은 않다.
개별 상담에 앞서 반 아이들의 1학년 생기부를 모두 출력해 읽어보았다.이 아이들이 어떤 생활을 해왔는지 가장 객관적으로 증빙해주는 자료는 역시 생기부이기 때문이다. 한 아이에 대한 여러 교사의 서술에서 같은 패턴이 읽힌다. 입사관이 학생을 평가하듯, 아직 잘 모르는 우리반 아이들을 생기부 서술에 의존해 파악해 본다. 최상위권 대학을 지망하는 아이부터, 애초에 입시에 관심조차 없는 아이, 관심이 있었지만 관심이 있다 말하기엔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 여러 아이들이 있다.
생기부를 읽고 나서 가정에 전화를 걸었다. 스물다섯명의 아이들 보호자와 통화를 마치는데는 꼬박 다섯시간이 걸렸다. 학기초에 하라는 학생 상담은 안하고 대체 뭐하는 짓이냐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생기부에 적힌 기록과 부모님의 목소리 뒤에 느껴지는 에너지를, 아직은 어색한 아이들의 눈빛과 하나씩 대조하며 저장해 둔다. 이공계열 아이들만 가득한 공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기운이 신선했다.
올해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올 한해 목표의 전부가 대학인 아이와, 대학따위 안중에도 없는 아이가 함께 생활하는 교실에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쳐야 할까. 너무 다양한 미래를 살게 될 아이들에게 모두 꼭 필요한 교육이라는게 존재하긴 할까. 모르겠다. 그냥 최소한 내 교실의 아이들이 비겁한 어른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해본다.
방학까지는 131일이 남았고, 이번주는 내내 엽떡이 먹고 싶었다. 이번 학기는 학교에 있는 동안 온 마음 다해 일하고, 3시 59분에는 반드시 퇴근을 할 것이다. 내 교실에 있는 아이들을 마냥 예뻐해줄 것이고, 내 품안에 들어오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너무 마음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주말마다 엽떡을 시켜 에일맥주를 마실 것이다.
잘 지낼 거란 뜻이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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