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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여기까지?
둘째를 키우며 공동육아라는 것을 시작했다. 육아에 마땅한 철학이랄 것은 없었지만 큰 아이의 성장을 겪으며 인지교육을 서두르고 싶지 않다, 자연을 좀 느끼면서 컸으면 좋겠다, 정도의 막연한 가치관이 자리 잡던 차였다. 그러니 내가 공동육아를 택한 것은 온전히 아이를 위한 이유였다. 하지만 4세부터 7세까지 4년, 이후 공육방과후까지 총 5년 반의 시간이 남긴 것은 아이들만큼이나 촘촘하게 얽힌 부모들의 공동체였다. 그녀를 만난 것도 공동육아 부모모임이었다. 길가의 풀잎에도 낯을 가리던 나의 둘째와는 달리 야무지고 붙임성이 좋아 단연 눈에 띄던 아이, 그녀는 그 아이의 엄마였다. 아이를 키우며 만난 인연의 이름은 누구 엄마로 고정되게 마련이어서 우리는 서로를 쉽게 oo엄마라 불렀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아는 ..
강원도에서 보낸 2박 후 머리를 싹둑 잘랐다. 철없는 고딩 때 조그만 사고를 치는 바람에 강원도에 갈 때에도 겨우 단발이 될까 말까 한 짧은 머리였는데 대학생이 되었으니 긴 생머리 한번 해봐야지, 하는 막연한 환상을 이 여행 끝에 완전히 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짧게 자른 머리에 통 넓은 힙합바지, 엉덩이를 푹 덮는 후드티를 입고서 두 번째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거제도였다.요즘에야 통영 고속도로와 거가대교가 개통되어 거제도는 거의 육지로 취급받는 섬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포항에서 거제에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포항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 명륜동까지 가서 지하철로 남포동 또는 중앙역까지 이동, 다시 15분쯤을 걸어 부산여객터미널로 가서 배를 타고 거제도로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포항에서 통영으로..
2000년 여름, 대학생이 되면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떠나는 여행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 믿었던 나는 포항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동해안으로 떠났다. 포항-울진-삼척-동해-강릉-속초까지 연결되는 7번 국도의 첫 번째 기억이다. 물론 어릴 때부터 고래불 해수욕장이라던가 칠포 월포 등의 동해 바다를 수 없이 다녔으니 아빠 차에 앉은 채 7번 국도의 일부를 분명 지났을 테지만 온전히 스스로 선택하고 계획한 여행은 이때가 처음이었다.특별한 계획이나 목적이 있는 여행은 아니었다. 단지 시간이 있었다. 몇 개씩 돌아가던 과외가 여름 휴가 시즌이라 일시에 일주일 정도 비게 되었던 이유, 개강까지는 시간이 있는데 가만히 정신을 차려보니 친구들은 해외로 어디로 많이들 갔다더라는 소식에 어 나도? 싶었던 마음. 포항 시외버..
추석연휴가 끝나고 다음 주도 원격 수업이다. 이제 그만 고3들이 원격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내 바람일 뿐이고 통보 받은 회의 결과는 1,2 학년 격주 등교였다. 그런데 회의 결과를 전해 들은 아이들의 반응이 의외다. - 추석 끝나고 일주일 더 원격! 그 담 주 한 주 등교하면 그 담 주가 중간고사임! - 어예! 뭐? 어예? 순간 잘못 들었나 했다. 진짜였다. 원격이 더 좋은 거냐 묻는 나에게 당연한 거 아니냐는 의외의 답변. 학교 오면 더 좋지 않나, 원격이 왜 좋은 거야? - 원격하면 8시 10분에 일어나도 되고, 비는 시간도 많아서 공부도 더 많이 할 수 있어요. 편한 책상에 앉아서 온종일 내 계획대로 할 수 있는데 당연히 원격이 더 좋죠! - 그래도 수업의 질이 좀 떨어지지 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