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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여기까지?

친구 같은 선생님은 없어. 본문

딸공

친구 같은 선생님은 없어.

딸공 2020. 10. 22. 21:51

오늘은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었다. 시험 끝난 날답게 급식 먹고 바로 집에 보내줬으면 좋았을 텐데 졸업앨범 촬영, 소풍 등 1학기부터 내내 미뤄둔 행사를 내일은 꼭 ‘해치워야’하기 때문에 집이 아닌 기숙사로 돌려보내야 했다. 그렇다고 점심때부터 전교생이 기숙사로 몰려갈 수도 없는 노릇, 긴 회의 끝에 오늘 오후는 4시까지 특강을 듣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방역지침 때문에 교실에 앉은 채 TV 화면으로 듣는 특강이, 그것도 시험 끝난 날 오후에 듣는 특강이 제대로 들릴 리가 없다. 아무리 관심 있는 주제에 빵 터지는 센스를 겸비한 강사가 왔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오늘 강연의 키워드는 AI... 초청된 강사님은 세상 진지한 수학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이 제자리에 앉아는 있어 주길 바랐다. 피곤하면 졸수도 있겠지만 바로 옆 교실에서 강연이 진행 중인데 게임을 하거나 수다를 떨거나 대놓고 음악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화가 많이 났다.

특강이 진행되고 있는 페르마실과 아이들이 앉은 교실을 동동거리며 오가는데 제대로 듣고 있는 아이가 정말 한 명도 없었다. 담임 잘못 만나 페르마실로 끌려온 1반 아이들을 빼면, 제 교실에 남은 아이들은 그야말로 게임과 수다와 잠과 그간 못한 모든 걸 풀고 있는, 시험 끝난 날의 자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얘들아, 지금 특강 중이잖아. 내 목소리가 파고 들어갈 틈은 어디에도 없었다.

 

방송시설도 아니고 그냥 학교에 남는 아이패드 하나 가져다 담임들 노트북으로 세팅해서 진행하는 온라인 특강이었다. 외부 강사님 불러놓고 제대로 안 될까봐 시험 감독을 하는 중에도 내내 신경이 쓰였다. 마이크가 필요할까 아닐까, 사소한 한 가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도 교실과 페르마실을 몇 번이나 오가야 했고,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 아이패드 케이스를 각도 맞춰 고정하느라 투명테이프를 둘둘 말아 키높이 책상에 고정시켜야 했다. 특강이 시작될 때 이미 나는 지쳐있었고, 왜 아무도 이 상황을 도와주지 않는 건가 당황스러웠다. 이건 내 일도 아니었는데.

 

그런데 내가 오늘 진짜 화난 건, 아이들 때문이 아니었다. 

"힘들지, 오늘은 그냥 놀아라 니들이 힘든 게 당연하지 지금 특강하는 학교가 미친 거야"

라고 말하기 전에,

"힘들지. 힘든 마음은 알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자. 그리고 혹시 아니, 오늘 들은 내용이 나중에 자소서에 기재할 소중한 밑천이 되어 줄지. 가벼운 마음으로 조금만 집중해보면 어때?"

라고 말했어야 했다. 적어도 교사라면. 감정은 공감하되 행동은 제한할 것. 교육의 기본이다. 

 

"시험도 끝났는데, 특강 들으라고 말을 못하겠네요. 얘네도 얼마나 놀고 싶었겠어요?"

 

네 선생님, 저도 선생님처럼 친구 같은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런데 있잖아요, 교사가 친구 같은 게 옳은 걸까요? 친구처럼 마음은 공감해 주더라도 필요한 순간에 꼰대 같은 잔소리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 학교가 이상한 건 나도 안다고요. 근데 학교가 이상하다고 애들 이렇게 하는 거, 그것도 전 이상한 거 같아요.

 

역시, 내가 아직까지 학교에 적응을 못하는 건 내 탓이 아니라 학교 탓이다.

친구 같은 친절한 선생님은? 개나줘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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