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여기까지?
내가 너를 만난 건 행운이었어. 본문
어제는 스승의 날이었다.
떠들썩한 인사가 어색한 나로선, 담임이 아니었던 지난 몇 해가 차라리 편했는데, 올핸 담임이라 피할 수 없었다. 진심으로 하루를 접어 없애버리고 싶다는 마음뿐으로 출근을 하고 수업을 한다. 출근을 안 할 방법도, 수업을 안 할 방법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 아이들이 가져온 카네이션은 받자니 민망하고, 받지 않자니 미안했다. 결국 제대로된 인사 한번을 못 하고, 도망치듯 퇴근을 했다.
아이들이라고 만난 지 백일도 채 안 된 담임이 그렇게 고마울 리는 없을 거다. 스승의 날이니, 옆반이 한다니, 으레 그렇듯 준비했을 걸 안다. 하지만 나에겐, 그 감사하단 상투적 말조차 너무 버겁다. 온 마음을 다해 교단을 지키는 사람도 많은데, 내가 뭐라고 그들과 나란히 인사를 받나. 이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닌 것 같고, 아이들이 준 꽃은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며칠 전부터 비 예보가 있던 오늘은 체육대회 날이었다. 비 오는 날 수학 수업은 못 해도(읭?) 축구 예선은 치르는 아이들이라, 체육대회 날씨는 며칠 전부터 큰 이슈였다. 잠깐 갠 하늘에 후딱 치른 체육대회. 평소보다 절반으로 줄어든 여유 시간인데도, 먼 발치서 바라본 아이들 얼굴은 정말 신나 보였다. 공 하나에 저렇게 웃을 수 있다니, 저렇게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다니. 처음 보는 그 밝은 얼굴이 너무 낯설고 반가워서, 그저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았다. 이렇게 크게 웃고, 떠들썩하게 최선을 다할 줄 아는 아이들이어서 다행이고, 이렇게 예쁜 아이들을, 내 수업에선 매번 엎드려 있게 만들어서 미안했다. 알면서도 당장 내일 수업이 오면 또 뭘 어째야 할지 모르겠어서, 더 미안했다. ,,역시 어제의 카네이션은 내 몫이 아니었다.
퇴근길에 예고없이 반가운 아이들이 찾아왔다. 비오는 금요일 나의 퇴근을 막아선 아이들과 함께 엽떡을 먹고 초코퍼지를 먹었다. 엽떡과 초코퍼지를 나누었다는 건, 내 기준 최고의 반가움의 표시였음을 아이들은 알았을 것이다.
눈앞에서 날 보는 아이들에게는 고맙단 말 한마디도 똑바로 못하면서, 떠나온 아이들의 인사에는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다. 투덜대면서도 꾸역꾸역 해주는 아이들이 고맙고 예쁘면서도, 뭘 하자는 말을 먼저 꺼내기가 점점 더 망설여진다. 대체 이게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다.
역시 어제의 카네이션은 내 몫이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그저 나에게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었을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