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여기까지?
R.I.P. 본문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질러서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났다.
조금이라도 나은 모습을 보고 싶어서,
힘겹게 소리를 내며 굳이 가르치려 들었었다.
사실 그땐 몰랐다.
더는 어떤 장면에서도 화가 나지 않는 그 순간이
나에게도 찾아올 거라는 것을.
화를 내는 일에도 꽤 많은 열정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학기초부터 미뤄온 개인상담을 시작했다.
이 좋은 봄날, 싱그러운 열일곱 아이와 마주앉아,
공부 열심히 해라 따위의 말을 건넨다.
겨우 이 정도 말이나 하려고 그 길을 돌아 교사가 된 건 아니었는데.
마음이 더는 차오르지 않아, 가진 단어들을 잃어버렸다.
기대없이 나를 보는 마냥 예쁜 눈빛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들켜버린다.
제주에서 또 한 번의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신문 기사를 보다가,
아침을 맞이하는데 큰 용기가 필요했던 순간들이 겹쳐져,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우리는 대체 어디쯤 서 있는 걸까.
학교는 대체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사가 마지막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은 대체 무엇일까.
더는 건넬 마음이 없다면,
여기에 내 몫은 없는 게 아닐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