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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망한 썰.. 본문

딸공

외출 망한 썰..

딸공 2025. 5. 14. 20:24

2015년에 만든 나의 여권이 오는 10월에 만료된다. 겨울방학 때 어디라도 튀려면 여권 갱신이 시급해서 숙제처럼 미루던 일을 해치운 게 지난주였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여권이 나왔으니 찾아가라는 문자를 받았다. 
시내 한복판 학교의 빅장점 중 하나는 주요 관공서가 죄다 슬세권이라는 점이다. (물론 나는 킥보드 타고 감...) 3교시 끝나자마자 깔끔하게 외출을 달고 나와 시청으로 날아가는데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이 너무 좋아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학교로 다시 복귀해야 한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완벽한 봄날의 외출이었다. 어차피 곧 점심시간이라 넉넉히 여유를 잡았고, 마침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니 혼자 남편의 생일파티를 해보기로 한다. (이 남자는 올해도 본인 생일에 해외 출장 중..)

혼자 맞이한 남편의 생일식사. (ㅋㅋㅋㅋㅋ)

밥먹고 마무리로 소금라떼 쪽쪽 빨며 복귀하는 상상을 하며 한입 딱 먹었는데 학생한테 전화가 걸려온다. 뭐지? 오전 내 프린트 부탁하는 학생들이 많았어서 그런가보다 싶어 한번은 외면했다. 그런데 곧바로 두 번째 전화가 울린다. 낮시간에 두 번이나 전화를 하는 건 심상치가 않다. 
"쌤, OO이가 4교시 체육시간에 다쳐서 지금 구급차 불렀어요."
"어? 선생님 바로 들어갈게!"
초밥 딱 한 개 먹고 달려나가는 내 뒷통수를 보고 사장님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키오스크 선결제 매장이라 다행이었..) 교문 앞에 도착하니 119 구급차가 학교를 막 빠져나가고 있었다. 여기저기 전화하고 보고하고 나니 종이 친다. 다행히 검사 결과, 별 일은 아니었다.
 
애가 다쳐서 119를 불렀다니 정신없이 달렸는데, 단순 타박상이라 괜찮다는 연락을 받고 나니 첫입으로 계란초밥을 먹은 게 몹시 후회스러웠다. (연어초밥이었어야 했는데ㅠ) 쓰지 못하고 삭제된 연가 1시간보다 아주 조금 더 아까운 나의 초밥. 사진이라도 찍어서 다행이다 또륵.

외출중이니 복귀할 의무는 없었다 따위의 이성적 사고도, 내 초밥은 버려졌을까 누군가 먹었을까 하는 합리적 의문도, 아이가 괜찮단 연락을 받고 나서야 들었을 뿐이다. 그러고보면 지난 산행체험 때도 김밥 딱 두 개 먹고 다친 학생 전화에 다 내려온 산을 거슬러 올라갔었는데.

이렇게 충남고에서의 첫 외출은 야무지게 망했다.
남편없는 남편의 생일파티도 함께.

나는 축구할때만큼 살아있는 아이들을 본 적이 없다. 체육교사가 되었어야 했나보다. 하지만 그건 다시 태어나도 쉽지 않을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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