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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여기까지?

스승의 날 아침, 여전히 아이들은 포스트잇에 평소 하지 않던 말들을 적어 주었고, 청탁금지법에 걸리지 않는다는 학급 반장이 카네이션 한 송이를 건네 주었다. 복잡한 마음의 스승의 날 아침. 스승의 날만 되면 갑자기 더워지는 날씨에 체육대회로 하루를 보내고, 퇴근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먼지와 땀에 범벅이 되어 집으로 향한다. 퇴근 후, 고기나 먹자고 찾아온 작년 아이들과 오랜만에 불판에 꾸운 고기를 배터지게 먹고 나와 너른마당에서 놀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렇게 깔깔 웃는 나, 참 오랜만이구나. 작년 아이들이 준 편지 중에 이런 말이 있더라, '쌤 솔직히 저희가 이 학교 마지막 학생이라 쌤도 좋으셨죠?' 라고. 찾아 오지도 않는 녀석이! 솔직히... 좋았나보다. 지금은? 나쁘지 않다.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
매년 내가 가정에 보내는 편지에 던지는 질문. 그 질문에 어느 학부모님께서 이렇게 답을 주셨다. 내가 살고 있는 하루가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매일 깨달으며 사는 사람. 파란 하늘을 매일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 아파서 병원에 갈 일이 없는 사람. 본인도 가지고 있는 재능이 있음을 알고 발전시켜 사회와 나라에 도움이 되는 사람. 학원에서 만들어진 참 어리다 싶은 아이들도 많지만, 어째 저리 잘컸을까 싶은 괜찮은 아이들도 정말 많다. 그리고 괜찮은 아이들 뒤에는 늘 괜찮은 부모님이 계신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새 아이들을 만났다. 1학년 담임. 오랜만에 만나는 1학년, 그것도 남녀 합반의 분위기에 적응하는 데는 한참 시간이 걸릴 거 같다. 아이들이 마냥 어리게만 느껴졌다. 학기초 학교에서 일괄 배부하는 기초조사서에는 희망 진로를 써내는 칸이 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의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듣고 싶어, 이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열일곱 나이답게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답들에 흐뭇해하다가, '조기졸업 후 KAIST에 가서 삼성이나 현대에 입사해 연구원이 되고 싶다.'는 답에 멍해졌다. 대다수 내 동기들이 걸어온 길, 우리나라의 공부 좀 한다는 이공계 수재들이 늘 걷는 길.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자란 인재들이 대기업의 배를 불리는 일을 삶의 목표를 삼는 게 바람직한 일일까. 이 꿈이..
이사준비 중. 10년 만의 이사라 묵은 짐이 많다. 냉장고를 뒤집다가 냉동실 젤 아랫칸, 15년이 지난 은행과 말린 대추를 집어들고 멈칫한다. 2006년, 대구 집을 정리하며 냉동실에서 꺼내 온 은행과 대추였다. 진작에 차라도 끓여먹고 구워 먹었음 좋았을까. 냄새나는 은행을 굳이 주워다 씻어 쟁이는 엄마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혹은 냉장고를 한번씩 뒤집을 때마다 버릴까 생각만 하다 차마 그러지 못하고 늘 제일 아랫 서랍에 다시 넣고 말았던 은행과 대추. 이제 먹지 못하는 건 나도 아는데 냉동실 한켠에 엄마의 흔적이 남은 듯, 생각하면 그냥 마음이 가끔 좋았다. 이제 그만 버려야 할텐데 이번에도 지퍼백만 옮겨 담아 다시 젤 아랫칸에 모셔두고 마는 나. 꽤 잘나가던 알루미늄 회사의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