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여기까지?
아마도 마지막 담임, 본문
유퀴즈에 어느 정신과 의사가 나와, '환자를 잃었던 순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 의사가 환자를 잃은 순간에 대해 뭐라 말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환자를 잃었다'는 말을 하던 그 순간의 입모양과 목소리 그리고 그냥 그 말 자체가, 나에겐 어쩐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환자를 잃은 순간은 이전과 이후가 참 선명한 경계가 있는 거구나, 정확하게 언제부터 애도하고 아쉬워해야하는지 뚜렷하게 남겠구나 하는 생각.
매일 같은 교실에서 지낸 아이의 눈빛이 더는 이전 같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 이 아이와 언제부터 마음이 어긋난 걸까 추측조차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뭐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맑은 눈을 빛내며 조잘대던 아이가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태도로 삐딱하게 날 바라볼 때, 그 삐딱함이 날 향한 것인지 세상을 향한 것인지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어 막막한 그런 순간. 그 순간의 나는, 학생을 잃고 있는 중인지 이미 잃은 것인지도 알 수가 없어서, 슬퍼할 수도 잡아보려 애를 쓸 수도 없어 허둥대고 만다.
마음이 어긋나는 순간의 경계를 분명히 알았다면 잡을 수 있었을까. 분명한 경계가 있었는데 내가 놓친 걸까. 이미 멀어진 마음의 거리가 얼만큼인지도 알 수가 없어서, 나는 아이가 떠난 불 꺼진 회의실에서 한동안 일어설 수 없었다.

그냥 한 장 뽑아 본 오늘의 타로는 Five of Pentacles였다. '마음의 결핍, 단절, 가까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희망' 나는 어떤 희망을 가까이 두고 보지 못하는 중일까. 나는 어떤 마음으로부터 멀어지는 중일까.
오늘은 빼빼로데이다. 그러니까 제천의 한 캠핑장에서 그 전화를 받았던 2020년의 그 날로부터 꼭 5년이 지났고, 2025년은 이제 꼭 50일이 남았다. 손틈새로 빠져나가는 아이에게 마음쓰지 않겠다는 올초의 다짐은, 올해도 역시 틀렸다. 하지만 나의 어설프고 익숙한 실패는 아마,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다.
'딸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수련회가 좋았던 게 아니야 (0) | 2025.10.25 |
|---|---|
| 나아가고 있다. (1) | 2025.09.17 |
|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면 (0) | 2025.08.23 |
| 가을보다 먼저 온, 개학 (0) | 2025.08.15 |
| 방학이 3일 남아 다행이지. (1) | 2025.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