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여기까지?
가을보다 먼저 온, 개학 본문
뜨거운 여름 내내 읽고 쓰며 보냈다. 아니 정확히는, 읽고 쓰고 고치고 고치며 보냈다. 글을 고쳐쓰다 보면 먼저 것이 더 나았던 것 같은 생각에 제자리를 맴돌고, 고쳐쓴 글에 컨트롤 제트를 누른 뒤에는 혹시 이게 나중에 떠오르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 불안했다. 한 편의 논문을 완성해서 투고했고, 또 한 편의 논문 초고를 끝냈다. 다시 하나의 글을 쓰기 위해 녹음본과 녹화본을 꺼내들고 전사를 하는데 문득 이게 정말 생산적인 일이 맞긴 한 걸까, 회의가 들었다.
뜨거운 여름 방학의 말미에 속초 출장을 다녀왔다. 검토를 부탁 받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도움을 주기보다 더 많이 배우고 온다. 여름 내내 글을 쓰느라 생각지도 못한 휴가 기분을 속초에서 아주 잠깐 느껴본다. 갇혀 지내는 출장에 바다 구경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냥 강원도의 밤하늘이, 사람들이, 좋았다. 시공간을 뒤틀어버리는 듯한 보안 합숙은, 언제나 몰입을 부른다.
가을보다 먼저 온 개학 탓에, 에어컨이 쌩쌩 돌아가는 교실로 출근을 한다. 이번 학기는 시수가 대폭 줄어 주 12시간만 수업을 한다. 미적분, 확률과 통계 중 하나를 고르라는 지시에 확률과 통계를 골랐기 때문이다. 선택과목인 미적분보다 그냥 모두가 듣는 확통을 가르쳐보고 싶었다. 모든 아이들을 한번씩은 보고 싶었다. 선행 없이 절대 못 따라갈 과목 말고, 그래도 한번은 해볼만한 과목을 가르치고 싶었던 탓도 있다.
방학 전, 마음이 쓰이던 몇몇 아이들에게 방학 숙제를 내주었는데 꽤 정성들여 숙제를 해왔다. 이 아이들에게는 더 마음을 쏟을 것이라 다짐했다.
한발 떨어져 바라볼 것.
답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마음 쓰지 말 것.
마음이 가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아끼지 말 것.
이번 학기는 딱, 그렇게 살 것이다.
개학 기념으로 교무실 냉장고에 초코퍼지와 요맘때를 채워 넣었다.
개학 준비는, 이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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