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여기까지?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면 본문
충남고 생활은 어때? 좋아 보이는데. 오랜만에 만난 작년의 인연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좋아 보인다는 건 어떤 걸까. 나는 작년보다 더 좋은 걸까.
충남고에서 한 학기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좋았다. 하지만 그 아주 좋음이 교사로서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그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마음 쓰지 않기를 꾸역꾸역 해내고 있을 뿐이다.
눈앞에서 지적을 해도 게임을 멈추지 않는 아이를 바꿔보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 욕하지 말라고, 게임 좀 그만하라고, 이제 곧 어른인데 뭐라도 좀 하라고, 그런 잔소리를 꿀꺽 삼키는 것. 골목길 차들 사이를 킥보드로 질주하는 녀석에게 위험하다고 겨우 한마디 건네고, 보란 듯 외면하는 모습을 애써 마음에서 지우는 것. 나 하나 떠든다고 달라질 것 없는 학교를 괜히 바꿔보겠다며 혼자 욕먹을 짓을 하지 않는 것. 내가 뭐라고, 대단히 고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으로 버텨온 시간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
나는 지금, 그걸 겨우 해내고 있을 뿐이다.
그저 종이 치면 수업을 하고, 종이 치면 퇴근을 한다. 아이들을 보면 여전히 예뻐 웃음이 나지만, 다가가지 않기 위해 애쓴다. 가까운 거리만큼 기대도 실망도 커진다는 걸 알기에, 그저 바라볼 뿐이다. 교직 15년 차, 이제야 그걸 조금 해낸다.
시간과 마음을 모아 글을 쓴다. 논문이 되기도 하고, 일기가 되기도 하고, 세상에 나오지 못할 원고가 되기도 하는 글들이, 요즘 내가 마음을 쏟는 일의 거의 전부다. 교육을 외면한 채 쓰는 글이 수학교육학 논문이 되는 게 맞는지, 내가 외면한 게 정말 교육이었는지, 외면하지 않았다면 그건 교육이 되었을지, 사실 아무것도 모르겠다. 글을 쓰고 지우는데 온 마음을 쏟다 보면 가끔 들려오는 동신과학고의 소식도 아득한 옛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교사 따위가 뭐라고, 그렇게 마음을 써가며 살았을까.
나는 요즘, 참 쉽게 좋아보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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