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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떠나며 (1) 본문

딸공

학교를 떠나며 (1)

딸공 2024. 11. 23. 21:59

이 글은 동신과학고 근무를 마치며 남겨두는 기록이며,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이다.

오랜만이란 말로 설명하기 턱없이 부족한 시간을 넘어 블로그에 다시 왔다. 마지막 글을 쓴지 꼭 4년이 지났고, 그 글을 쓴 날로부터 내가 한치도 성장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2024년 9월 8일 일요일 밤, 한 선생님으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학기초부터 유난히 마음 쓰이던 한 학생이 팀프로젝트 단톡에서 자퇴의사를 밝혔다는 내용이었다.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 아이가 입학전부터 블로그를 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무작정 포털에서 검색을 했다. 동신과학고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상단에 노출되던 블로그였다. 
찾고 싶은 아이의 정보는 안 보이고 뜻밖의 게시판이 검색되었다. 디시인사이드 동신과학고 갤러리였다. 후에 나는 이 게시판을 클릭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만약 나에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딱 한번 주어진다면 나는 9월 8일 저녁시간으로 돌아가 절대로 검색 따윈 하지 않는 쪽을 택할 것이다. 
몇몇 아이들의 실명, 학교와 교사를 향한 입에 담지못할 욕들이 일상적으로 작성된 채 장난스럽게 남아있었다. 일과시간 중, 그것도 모자라 수업시간 중에 눈앞에 있는 선생님을 묘사하며 남긴 글도 있었다. 거기서 멈췄어야했는데. 



나를 기억한다면 6기 아니면 8기일 터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앞에서만 잘해주고 뒤에서는 밥그릇 챙기기 바쁜 교사인 나는 인간적인 면모가 없고 패시브적으로 늘 화나있고 짜증나 있는 사람,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는 인식이 너무 박혀 있는 사람, 학원에 가서 자기 풀이를 공유하라고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수업 들어온 적 없다면 나와 대화 한 번 해본적 없는 10기일텐데 나를 얼마나 안다고 이런 글을 썼냐고, 대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고 묻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이들의 안전한 놀이터인 디씨는 철저히 익명의 공간이니까.
11기가 올린게 분명한 글에서 나는 누가 더 싫은지의 투표 대상이 되었고, 나를 저격한 이 글은 수많은 추천을 받아 개념글이 되어 있었다. 

 
여기서 모른척 했어야 했을까. 잘못된 건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11기 단톡에 글을 남겼다. 밤 12시 10분이었다. 


늦은 밤 이런 글을 쓰게 되어 매우 슬픕니다. 대다수는 관계 없는 내용일 것이 분명해 간단히 씁니다. 

디시인사이드 동신과학고 갤러리에 선생님에 대한 비방과 욕설 글 또는 댓글을 올린 일이 있는 학생은 내일 아침 8시 전까지 저에게 개인적으로 카톡하시기 바랍니다. 내일 아침 8시 이후에는 누구에게도, 어떠한 인정도,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몇년간의 글 보다 올 한해 올라온 글이 많은 것은 11기들이 가장 활발히 활동하기 때문이겠죠. 실명을 거론하지 않아도 누구나 유추할 수 있는 초성 또는 유사 단어를 기재한 것 또한 명예훼손 및 모욕죄에 해당합니다. 익명의 글이라도 사이버 공간의 모든 흔적은 당연히 추적이 됩니다. 그리고 한번 남겨진 기록은 평생 지울 수 없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월요일 아침 8시까지 누구도 연락하지 않았다. 어떤 글도 지워지지 않았다. 밤을 꼬박새우고 출근을 해서 다른 학년 게시판에도 글을 써 붙이고 같은 내용의 글을 갤러리에도 남겼다. 다시 하루를 줄테니, 화요일 아침 8시까지 자신이 쓴 글이나 댓글을 지워달라는 내용이었다. 글을 지우기만 하면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지만 기한 이후에는 교육활동침해든 뭐든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을 거라는 강경한 내용도 있었다. 이게 문제였을까.. 내가 올린 글을 조롱하는 글들이 게시판에 들끓기 시작했다. 
 

 

 


디시인사이드에 메일을 보내 갤러리를 삭제해줄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디씨는 마이너 갤의 모든 관리는 갤주라 불리는 게시판관리자에게 일임하고 있다고 했다. 동신과학고 갤러리의 갤주가 현재 공석이니, 차라리 갤주가 되어 스스로 갤러리를 폐쇄하는게 어떻겠냐고도 했다. 그렇게 갤러리 폐쇄를 목적으로 나는 갤주가 되었다. 
권한을 받자마자 갤러리를 폐쇄했어야했는데, 폐쇄를 위해서는 2차 인증을 해야했다. 학교 일에 바빠 하루 이틀 미루다 폐쇄 신청을 접수한 게 하필 추석연휴 첫 날이었다. 마이너 갤은 폐쇄요청이 들어가면 폐쇄 진행 중임이 모든 사용자에게 공지가 된다. 문제는 평소같으면 하루면 끝날 폐쇄 과정이 쓸데없이 오래걸렸다는 점이다. 연휴가 포함되어 무려 5일을, 폐쇄가 진행중이지만 폐쇄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 시간 동안, 인간이라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은 수많은 글이 올라왔다. 
고 노무현 대통령, 박원순 시장의 사진과 함께 갤주님 안녕하냐는 글부터, 갤주된 걸 축하한다는 글까지, 대체 저 분들의 사진을 왜 이런 조롱글에 소모하는 건지,, 클릭하다가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게 되는 글들이었다. 올라오는 대로 삭제를 했더니 이번엔 '천안문'이라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 말이 관리자가 글을 계속 지우는 상황을 천안문 사태에 비유하는 디씨인사이드 용어라는 걸 알았다. 대체 이 아이들의 왜곡된 인식은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하는 걸까. 


익명의 닉네임을 딸기O주 라고 쓴 글도 올라왔다. 딸기공주라는 닉네임을 안다는 건 이 블로그를 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저 아이는 내가 직접 가르친 6기다.. 


 

 

 
고소했냐는 글도 꾸준히 올라왔다. 나는 어디에서도 고소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지만, 이미 나는 내 밥그릇 챙기기 바쁜 교사면서 그걸 지적한 학생을 고소하겠다고 협박한 사람이 되었고, 아니라는 말을 들어줄 대상은 없었다. 내가 책임을 묻겠다는 건 교육활동침해에 대한 교칙에 따른 책임을 의도한 것이었지만 결국 그마저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고, 더는 의미도 없었다. 


마지막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이 아이피는 서울대학교 와이파이였다.  

 


학생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학생들이 비판했다면 수용하고 성찰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익명의 공간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남긴 글로 인해 일상을 더 이어나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이 기간 중 나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바로 볼 수 없었다. 자신이 뭐가 부족한지 성찰하는 수준을 넘어 자학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 앞에서 밝게 웃던 아이들이 바로 뒤에서 어떤 글을 쓸지 몰라 두려웠고, 수업을 하면서도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다. 평소 하지 않던 수업 실수도 하고, 이걸 바로 잡으면서도 마음은 바닥을 찍었다. 수업 교재에서 오타를 발견하고 바로잡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힘들었다. 하필 남편은 이 기간 내내 해외 출장 중이었고, 퇴근 후 다시 출근하기 전까지 아이를 챙기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울다 멈추다를 반복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이러다 정말 살 수가 없겠다 싶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갤러리 폐쇄는 내가 살기 위해 내린 조치였고, 아무리 울어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든 끊어내야 했기에 해낸 유일한 저항이었다. 4년 전의 그 날처럼, 이번에도 나는 내 학생을 신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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