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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여기까지?

OO에게. 본문

딸공

OO에게.

딸공 2020. 10. 16. 13:47

 

OO야, 날도 춥고 수업도 끝났는데 어디 카페라도 같이 가서 땡땡이 좀 칠까 하다가, 이미 충분히 오지랖 부린 거 같아서 꾹 참고 왔다. ㅎㅎ 혼자 마음 풀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모른 척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힘든 순간을 겪을 때는 주변 어른들이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어. ‘나중에 돌아보면 그것도 다 추억이다.’라고. 그 얘길 들으며 추억 따위 만들겠다고 이렇게 힘든 건가, 한숨이 나오면서도 그래 결국 지나가겠지 생각하며 버텼어. 그런데 나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힘들었던 그 순간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진 않아. 오히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엄청 슬프고 아픈 순간으로 기억되어 있을 뿐. 그래 봐야 엄청 오래 산 것도 아닌데 인생의 중간 중간 구간들이 검정색 블럭으로 칠해져 있는 느낌이라면 이해가 될까.

그래서 나는, 니가 힘든 순간을 억지로 버티지는 말았으면 좋겠어. 눈물이 날 땐 실컷 울면 되는데 울고 나서는 잠깐이라도 웃었으면 좋겠고, 또 힘을 냈으면 좋겠어. 나는 엄청 힘들 때 그냥 울면서 버텼거든. 울고 또 울고 다시 일어날 것 같다가 또 넘어져서 울고.. 그게 참 회복이 안 되더라고. 그랬더니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은 죽어도 돌아가고 싶지 않거든. 생각해 보면 내가 그렇게까지 엉망인 상태도 아니었는데 내가 자신 없는 부분만 크게 보이니까 정작 나의 장점은 하나도 안 보였던 거야. 근데 고등학교 시절이라는 게 생각해 보면 삶에서 정말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인데 그 순간을 그렇게 넘겨버린 건 너무 슬프잖아.

 

내가 아는 너는 진짜 어디든 추천하고 싶은, 어디 데려다 놔도 얘 참 괜찮다고 얘기해주고 싶은 그런 아이야. 너의 중학교 선생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 당장의 노력이 결과로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니가 얼마나 괜찮은 아이인지 그것만큼은 절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오늘을 돌이켜 봤을 때 절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새까만 그런 날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힘내자.

 

참.. 언제 한번 땡땡이치고 카페라도 갈까. 따뜻한 라떼의 계절이 돌아왔어. 운동장을 바라보고 서 있는 니 머리 위에 하늘이 어찌나 비현실적으로 예쁘던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몹시 당황했던 건 비밀.. 이렇게 좋은 날, 하늘이 예쁜 것도 모르고 밤이 와 버리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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