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여기까지?
원서 접수를 마치며 .. 본문
대입 자소서를 지도하면서 동시에 고입 자소서를 읽는다. 읽는 자와 쓰는 자의 입장 차이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글자 수에 담지 못한 말들까지 행간에 여백에 꾸역꾸역 실어 담아 호소하는 쪽은 늘 쓰는 자다. 반면 빠르고 정확하게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문장에 담기지 않은 말은 듣지 말아야 하는 쪽은 늘 읽는 자다.
고입 자소서에는 유행이란 것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고등학교 2~3년의 활동이라는 게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고 영재원이나 자유학기 또는 학원에서 미는 테마들도 결국 유행을 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몇 년 전까지 대유행하던 황금비, 프랙탈, 스트링아트 등이 최근에 대거 빠지고 그 자리는 아두이노와 파이썬이 점령하는 식이다. 요즘 고입 자소서의 트렌드는 단연 코딩이다.
대입 자소서에도 유행이라는 게 있나? 주로 쓰는 자인 나는 이걸 잘 모르겠다. 고입과 달리 대입은 전공을 정해서 지원하는 방식이다 보니 아이의 활동도 일관성과 지향성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아이가 꾸준히 해온 활동을 기록하고 검증하고 서술하는데, 자소서를 쓰면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다는 웃픈 이야기도 한다. 자기소개서지만 자기를 있는 그대로 소개하면 큰일나는 글, 대입자소서의 현실이다.
아이들이 주로 어려워하는 것은 대교협 1번 문항이다. 활동을 쓰라는 2번 문항은 그나마 생기부를 째려보면 대충 뭐라도 건지는데, 학습 경험을 쓰라는 말엔 방향 조차 못 잡는다. 열심히 해왔어요, 말고 딱히 할 말이 없는 아이들. ‘자기주도적으로 노력한 학습경험’이란 말에는 더욱 기가 죽어버린다.
- 니가 늘 해오던 거, 그대로 쓰면 돼!
- 아니 그건 너무 평범해서요.
자기주도적으로 노력한 경험이지만 특별해야 하고, 꾸준해야 하고,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며, 성장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결국 계기를 상상하고 난관을 설정하여 극복기를 제작한다. 몇년을 반복해도, 자소서라는 것의 정답을 여전히 알 수 없는 이유다. 원서 접수가 마감되었다. 자소서와 추천서도, 오늘이면 모든 대학이 마감이다.
- 면접준비 해야지?
- 맞아요 쌤. 자소서에 쓴 내용을 수습하러 가야 해요.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지만, 아이들을 탓할 수 없다. 나도 공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