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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여기까지?

나의 두 번째, 혼자 여행 본문

여행

나의 두 번째, 혼자 여행

딸공 2020. 10. 13. 14:30

강원도에서 보낸 2박 후 머리를 싹둑 잘랐다. 철없는 고딩 때 조그만 사고를 치는 바람에 강원도에 갈 때에도 겨우 단발이 될까 말까 한 짧은 머리였는데 대학생이 되었으니 긴 생머리 한번 해봐야지, 하는 막연한 환상을 이 여행 끝에 완전히 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짧게 자른 머리에 통 넓은 힙합바지, 엉덩이를 푹 덮는 후드티를 입고서 두 번째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거제도였다.
요즘에야 통영 고속도로와 거가대교가 개통되어 거제도는 거의 육지로 취급받는 섬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포항에서 거제에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포항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 명륜동까지 가서 지하철로 남포동 또는 중앙역까지 이동, 다시 15분쯤을 걸어 부산여객터미널로 가서 배를 타고 거제도로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포항에서 통영으로 가는 버스가 있긴 했는데 어차피 부산을 찍고 돌아가는 노선이라 소요 시간이 매우 길었고, 버스는 충분히 타 봤으니 좀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보자는 생각으로 부산에서 배를 타는 여정을 택했다.
분명히 학생 식당에서 조식을 먹자마자 출발한 것 같은데 장승포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늦은 오후였다. 터미널 앞 PC방에 들어가 숙소와 식당을 검색하며 html 태그만으로 끄적끄적 만들었던 개인 홈페이지 게시판에 내가 거제에 왔음을 알렸다. 실시간 알람이 없던 시절이라 댓글은 하루 이틀 지나야 달릴 것이다. 외도와 포로수용소를 가보자, 거제가 얼마나 큰 곳인지 감도 없고 겁도 없던 나는 근처 식당에서 해물 뚝배기 한 그릇을 주문하고 외도 가는 방법을 물었다.
- 외도? 와현가서 유람선 타고 들어가야 할 텐데 유람선이 오늘 있으려나?
- 와현은 어떻게 가는데요?
거제라는 섬이 대중교통으로 여행하기 몹시 어려운 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40분마다 온다던 와현 행 버스는 한 시간 반이 넘어가도 소식이 없었다. 어플도 없던 시절, 마냥 기다리는 것 말고 방법이 없던 나는 거의 울상이 되었고, 멀리서 진즉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던 택시기사가 다가와 와현까지 만오천 원에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어스름이 깔린 장승포 바다를 바라보며 저 택시기사를 믿어도 될 것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버스가 왔다.
와현에 도착했을 때 외도행 마지막 배는 물론 끊어진 뒤였다. 와현에서 하룻밤 묵을 적당한 숙소를 꽤 능숙하고 골라 흥정했다. 두 번째 여행이기 때문인지, 짧게 자른 머리 덕분인지는 모르겠다. 첫 배로 입성한 외도에서 나를 잡아 끈 것은 관광 책자에서 극찬한 조경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탁 트인 맑은 바다였다. 꽃무늬 수영모자를 쓰고 어릴 적부터 드나들던 북부 해수욕장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 바다라고 다 같은 바다가 아니네, 와, 진짜, 오길 잘했다.
첫 배로 들어간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10분, 15분 간격으로 드나드는 배가 늦은 휴가를 떠나온 단체 관광객을 꾸역꾸역 토해내는 바람에 좁은 섬은 곧 사람으로 꽉 차 버렸으니까. 쏟아지는 사람들을 피해 외도를 빠져나오며 생각했다.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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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현에서 포로수용소가 있는 고현까지는 섬을 가로지르는 꽤 먼 거리였다. 포로수용소로 가는 차가 맞는지 재차 확인한 뒤 버스에 올랐다. 분명 거제는 섬인데 왜 이 차는 산을 넘어가는 것인가, 커다란 룸미러에 라이방 쓴 기사님과 눈이 마주친 것 같은 착각을 해가며 꾸벅꾸벅 졸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 다음 정류장은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입니다.
라고 들은 것 같았다. 잠결에 나는 분명히 그렇게 들었고, 그래서 팔딱 튕겨 곧 닫히려는 버스 문틈으로 뛰어내렸다. 기사님이 등 뒤에서 뭐라고 한 것 같기도 한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아무튼 나는 무사히 내렸고, 버스는 떠났다. 자, 이제 포로수용소를 보러 가자. 흑백 필름 한 통을 새로 말아 넣은 펜탁스 카메라의 두꺼운 가죽 스트랩을 목에 걸고, 또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포로수용소라니, 흑백 사진 찍기 딱 좋은 곳일 거야!
그런데 좀 이상했다. 사전에 확인한 정보에 의하면 포로수용소는 꽤 번화가에 있다고 했다. 고현이란 곳은 거제 버스터미널이 있을 정도로 시내였고, 포로수용소 앞 버스정류장은 교차하는 노선만 여러 개가 있었다. 그런데 왕복 2차로의 한적한 길가, 길 아래 내려다보이는 비현실적 예쁜 바다, 그리고 이 단출하고 귀여운 버스정류장, 대체 뭐지?
내가 내린 곳은 포로수용소 입구가 아니라 인적이 드문 어느 해안도로였다. 배차 간격이 무려 55분인 버스였다. 와현에서 이미 한참을 기다려 탄 참이었고, 내가 가진 것은 얼마간의 현금과 거제 여행 책자, 그리고 어디에 써야 할지 알 수 없는 외도에서 구입한 작은 목각 인형 뿐이었다. 스마트폰은 당연히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다, 좀 걸을까 생각하다가 멈춘다. 무엇보다 여기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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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 앉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용달차 한 대가 저 멀리서 다가왔다.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는데 뭐, 벌떡 일어나서 손을 흔든다. 펄쩍펄쩍 뛰기도 했던가? 하얀색 용달차, 아니 천사님이 탄 차가 나를 조금 지나쳐서 멈췄다.
- 아저씨!! 저 좀 태워주세요!
- 어디까지 가요?
- 어디든 상관 없어요. 아니 사실은 고현에 가는 길인데 잘못 내렸어요. 버스가 많이 다니는 큰 길 아무데나 세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아이고 아가씨네? 얼른 타요 이런 데 오래 서 있으면 위험해요.
 
굳이 머리도 짧게 자르고 떠난 길, 아가씨니까 위험하단 말이 걸렸지만 일단 올라탄다. 히치 하이킹의 로망 같은 걸 갖고 있던 건 결코 아니었는데 이건 거의 생존의 문제에 가까웠다. 나를 태워준 천사 아저씨를 의심하거나 걱정해야 할 정도로 세상이 험하진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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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우연이라기에 너무 다행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질 때 나도 모르게 감사를 드리게 된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해안도로에서 나를 태워준 아저씨는 정말 천사였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지만 나는 정말로 무모했고 아찔할 정도로 철이 없었다.
큰길 아무 데나 세워달라고 했지만, 아저씨는 고현에 집이 있어 가는 길이니 그냥 같이 가자고 했다. 해안도로를 달리며 이야기를 나누다 혼자 여행을 왔다는 말에 아이고! 한다. 이십 년 전 여자 사람의 혼자 여행에 흔히 따라붙던 감탄사다. 가는 길에 김영삼 대통령 생가가 있다며 어차피 여행 왔으니 들러보라는 아저씨. 그럼 고현까지 어떻게 가라는 건가 고민하는 나에게 기다릴 테니 천천히 보고 오라고 했다. 어예! 뜻밖의 가이드를 얻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 옥포 해전 기념공원까지 둘러 보고 고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다.
- 언제까지 여행해요?
- 고현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쯤 가려고요.
- 숙소는 있어요?
- 아뇨 이제 찾아봐야죠.
- 우리 집에 가서 잘래요?
- .....
 
이쯤 되면, 아무리 철없고 무모한 나라도 의심이라는 걸 해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늦은 점심 겸 저녁이나 먹자며 근처 식당으로 움직이는 용달차 조수석에 앉아, 나의 머릿속은 인신매매 납치 사기 등의 온갖 난잡하며 현실적인 단어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 에잇, 여기까지 왔으니 밥은 내가 산다고 하고, 밥만 먹고 가는 거야. 갈치 조림이 비싸봤자 얼마나 하겠어?
 
외도 가는 첫 배를 타느라 편의점에서 대충 때운 아침 이후 첫 식사, 불안한 마음보다 배고픔이 컸다. 갈치 조림은 눈치 없게 너무 맛있었다.
 
- 저 이제 가볼게요, 밥은 제가 사겠습니다!
- 학생이 무슨 밥을 사요, 여기 내 단골집이라 들어올 때 계산 했어요.
- (뭐지, 식당 사장님까지 한 팀이었나?)
- 숙소도 안 잡았다면서, 내가 부탁할 일이 하나 있는데 우리 집에 가서 자고 낼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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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어먹은 밥은 있고, 부탁할 일이 있다는 데 모른 척은 못 하겠고, 그렇다고 처음 보는 아저씨네 집에 따라가자니 정말 미친 짓 같고.. 정말 울고 싶었다. 에라 모르겠다, 불안할 땐 그냥 불안하다고 말을 하자.
"아저씨, 저 사실 너무 감사하긴 한데요, 오늘 처음 뵌 분한테 집까지 따라가서 신세 지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솔직히 죄송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숙소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안내해주시고 밥도 사주시고 진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아......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네요. 그럼 잠깐 내 얘기만 들어보고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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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아저씨네 집으로 갔다. 고현 시내의 한 아파트 7층이나 8층 정도로 기억한다. 스위치를 올릴 때 느껴지던 어둠 속의 인기척. 그리고 나의 불안을 덮어버린 깊은 우울과 슬픔. 여름 끝자락의 습한 공기와 적대감 없이 노출된 어둠 속의 눈빛도. 마치 온 집안을 덮고 있던 마크로크로스케가 점등과 함께 휙 하고 물러나는 것만 같았다. 밝아진 거실 중간엔 아저씨의 딸이, 마치 가구처럼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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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나를 초대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그날 하루 중 어느 시점인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혼자 여행을 떠나왔다는 말을 들으며 당신 딸도 혼자서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정도로만 기운을 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여행하는 중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어쩌면 내가 당신 딸의 좋은 대화상대가 되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 아빠 친구 딸이야, 오늘 밤에 우리 집에서 자고 갈 건데 그냥 언니라고 부르면 돼.
 
짧은 소개를 마치고 아저씨는 약속대로 집을 비워주었다. 생각해 보면 처음 만난 아저씨를 따라온 나만큼이나, 처음 만난 나에게 딸을 맡긴 아저씨도 무모하긴 마찬가지였다. 딱히 할 말이 없는 우리는 그냥 어색한 채로 나란히 누웠다. 그러다가 무슨 이야기를 시작했더라. 음, 나에게도 너처럼 아픈 엄마가 있어, 라고 했던가. 엄마가 병원에 계신지 오래 됐다며? 라고 먼저 물었던 거 같기도 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딱히 위로라던가 따뜻한 말이라던가 그런 쪽엔 젬병이어서 나는 그냥 내 얘기만 계속 떠들었다. 그러다가 그 아이가 라디오를 켰고, 노래를 듣다가 라디오를 듣다가 또 이야기를 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야기하다 말고 우리는 같이 꽤 많이 울었던 것도 같다.
 
그 후로 2~3년간 우리는 간간이 메일을 주고 받았다. ‘간간이’의 간격이 조금씩 길어지다가 결국 끊어졌지만. 지금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저씨가 건네준 명함의 두꺼운 고딕체 상호와 이름 세글자 뿐이다. 언제 한번 놀러 갈게요, 헤어지며 건넨 인사는 결국 지키지 못했다. 그 후로 가끔 구글링을 하며 환경운동 관련 신문 기사에서 아저씨의 이름을 보고 혼자 반가워하고, 또 잊었다. 무모한 스무 살의 나와 나보다 더 불안하던 그 아이, 그리고 나를 믿고 하룻밤을 내어준 아저씨에게 감사한 마음만 잊지 않고 있다.
 
다음날 아침 인사하고 떠나는 나를 아저씨는 더 잡지 않았다. 휴대폰이 없다는 아이에게 메일 주소를 적어주고 언젠가는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그 뿐이었다. 여행지의 기억은 여행지에 두고 온다, 오랜 나의 여행 습관이 시작된 것도 이 때였던 것 같다. 
나의 두 번째 혼여행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도 너무나 무모하고 철없었던 나에게 그런 행운이 찾아온 것은 두고 두고 감사한 일이다. 개강과 함께 여행의 기억은 빠르게 지워졌지만 여행지에서 받은 배려와 뜻밖의 만남, 그리고 인연은 그 후로도 내가 가볍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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