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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여기까지?

[20190807-20190811] 방콕, alone (4) 본문

여행

[20190807-20190811] 방콕, alone (4)

딸공 2019. 8. 12. 21:44

출발 전 검색한 방콕의 날씨는 우기답게 비비비였다. 일주일을 꼬박 비가 오리라고 예고하는 웨더닷컴 페이지가 저주처럼 느껴지던 날, 될대로 되라지 생각하며 우산 하나 덜렁 챙기고 잊었다. 빗방울이 잠시 스쳤으나 온종일 평균값이 맑음으로 수렴하던 첫 날의 하늘을 보며 역시 내 운빨은 갓구글도 이기는구나, 잠시 오만했다.

보란듯이 밤새 비를 뿌리고 휴미디티 90%의 촉촉함(!!)을 자랑하는 둘쨋날 아침. 새벽사원을 계획하며 이른 조식을 먹는다. (라고 썼지만 이미 여덟시ㅋㅋ 여행지에서 여덟시 조식이면 새벽밥인걸로 해두자) 하얏트 조식은 가격대비 빈약했다. 풀과 빵을 집어 담으며 소세지도 없다고 투덜투덜하다가 습관적으로 크라상을 토스터기에 넣었는데 숯이 되어 나왔다. 엥? 하고 보니 토스터에 크라상을 넣지 마세요. 라고 사진까지 첨부해서 붙어있었네. 허허허 すみませえ;;
 
지중해느낌 충만한 콥샐러드와 차가운 것들을 대충 먹고 있는데 옆사람이 오믈렛을 들고 지나갔다. 헐 반전. 벽처럼 보이던 곳에 공간이 하나 더 있었다. 쌀국수, 똠얌스프, 오믈렛 주문코너와 흔한 조식뷔페 구성품은 다 저기 있었네. 다시 보니 내가 두 접시 가득 퍼온 곳은 베지테리언과 할랄 푸드 공간이었음. 배가 찢어질거 같았지만 굳이 치즈듬뿍 오믈렛을 주문해 먹으며 조식값을 채워본다.

흔한 방콕의 아침.

먹부림을 부리려고 했는데 먹을게 없던 조식. (빈약한 와중에도 열심히 퍼옴 ㅋㅋㅋ) 삼가 故크라상의 명복을.

공간의 반전.

굳이 소세지와 오믈렛을 더 먹음. 빈접시는 그냥 배경입니다.



왓아룬. 새벽사원. 새벽에 가지 않으면 더워 죽을지도 모르므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누가 그랬다. (설마) 실제로는 아룬이 태국어로 새벽을 뜻하기 때문이라는 초록창 피셜. 새벽사원은 짜오프라야강 건너에 위치해있어 배를 타야할텐데, 구글맵에선 BTS, MRT로 안내를 한다. 환승까지 고려하면 애매한 노선이니 160바트, 6천원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냥 그랩바이크를 부른다. 왓아룬 가주세요. 말할 필요 없다. 어플에 찍었잖아. 바이크를 타고 신나게 달리며 선착장에 가면 오렌지보트를 타야지 절대 관광객 호구용 배에 당하지 않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보란듯이 짜오프라야 강을 건너가는 바이크. 생각해보면 태국의 수도를 가로지르는 강인데, 찻길로 건너가는 다리 쯤은 있는게 당연하잖아 ㅋㅋ 왜 짜오프라야 강은 꼭 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 왓아룬 뒷문에 슬쩍 내려주고 가려는 기사를 붙잡고 10바트 더 줄게 티켓박스 있는 정문에 버려줘, 하는 나. 350보의 걸음과 10바트는 공정거래인줄 알았는데 나보다 훨씬 노련한 기사는 쿨하게 10바트 더 받고 가까운 후문에 내려줬다 ㅋㅋㅋ 티켓박스는 후문에도 있다며. 천재. ㅠㅠ (50보의 걸음과 10바트를 교환했음;;)

바이크 타고 나서는 방콕의 아침. 상쾌해 보이는 건 기분 탓. 개 열마리가 온 몸을 핥아대는 느낌의 습도였다.

짜오프라야 강을 건너는 다리. 세상에 저 강을 차로도 건넌다고 신기해하는 내가 신기한거 맞지? ㅋㅋ

 

방콕의 왕궁과 사원은 <ONLY FOR GIRL> 복장 제한이 있는데, 어깨가 드러나는 나시나 무릎이 보이는 옷을 입고는 입장할 수 없다. 그래서 사원이나 왕궁 입구마다 반팔티, 긴 치마를 팔거나 대여하는 장사들이 엄청 성행함. 복장제한이 공간의 신성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세상인들 생존권을 위해 존재하는게 아닐까 의심스러웠지만, 굳이 난해한 복장을 빌려입지 않기 위해 미리부터 긴치마와 반팔티를 챙겨입고 나왔다. 내사랑 셀카봉과 리모컨도.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을 사진을 찍는다. (혼자 사흘만에 1642장 찍고 옴-_-)

반짝이는 타일이 참 인상적이던 왓아룬.

과한 설정샷.

건장한 팔뚝은 원근에 의한 왜곡이다. ㅋㅋㅋ

한손에 리모컨을 꾹 쥐고서.

일관성 넘치는 나의 사진들.

여기가 정문.

저기 제가 사진을 찍는 중인데...

정문에는 노점도 많았다. 난 분명 몇년 전 씨엠립에서 산 코끼리 가방을 메고 갔는데 어딜가나 같은 가방이 넘쳐서 당황 ㅋㅋ 동남아는 코끼리로 대동단결인가요. (근데 씨엠립보다 방콕이 세 배쯤 비싸다. 이제 결코 싸지 않은 방콕의 물가..)

안녕 길냥이.

실컷 돌아보고 나와 정문을 보니 다시 들어가고 싶어짐. ㅋㅋ

역시 앞태가 이쁘군요.

너는 앞태 나는 뒤태 -_-

 

왓아룬에서 강을 건너면 왓포 사원과 왕궁이 있다. 왕궁은 몇년 전 여행때 잠시 들렀다가 너무 많은 인파에 공중부양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진귀한 경험을 했던 곳이라 두 번은 갈 마음이 없어서 왓포 사원만 들러보기로 한다. 강변에 늘어선 선착장마다 서로 다른 배 표를 팔고 있는데 구글 맵이 이끄는 대로 가장 안쪽까지 걸어 들어갔다. 티켓박스를 기준으로 가장 먼 곳에 있는 안쪽 선착장은 왓포-왓아룬만 오가는 직행 배가 있는 곳. 가격은 4바트(80원).

여기가 아닙니다.

여기가 진짜 직행 4바트짜리 배를 타는 곳.

안녕 왓아룬. 넌 멀리서 보니까 더 예쁘구나. 해질녘 촘아룬에 앉아 봐주지 못해 미안해. 언니가 게을러서 예약따윈 하지 못했어. ㅋㅋ (촘아룬: 왓아룬 야경을 보며 밥먹는 걸로 유명한 짜오프라야 강변의 식당, 3개월전부터 예약한다는데 당일 노쇼도 은근 많아 의외로 현장 입장도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굳이 가보진 않음. 한국인 손님이 대부분이라는 태사랑피셜)

왓포 선착장.

왓포사원에서 200바트 내고 입장권을 사면 생수 티켓이 붙어있다. 현지 물가를 생각하면 200바트 겁나게 비싸네 관광객이 호구냐! 하다가 어? 공짜로 물을 주네. 이런 착한사람들. 이라고 생각하는 나. ㅋㅋㅋ

적절한 타이밍에 찬 물을 획득하셨습니다. (원샷)

사진을 찍으며 놀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비가온다. 엥.

 

왓포 사원은,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왓아룬만큼 예쁘지도 않았고 깃발 관광객들도 너무 많은데다 비가 오기 시작하니 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로 범벅이 되고 있었다. 잠시 둘러보다가 미련 없이 돌아 나와서 걷는다. 왓포-왕궁으로 이어지는 길과 짜오프라야강변의 상점들이 사원보다 훨씬 예쁘다. 트립어드바이져 스티커가 붙은 예쁜 카페들과 젓갈냄새 가득한 리어카가 나란히 서있는 비현실적 현실의 거리. 잘못 들어간 골목에서 우연히 발견한 오픈 전의 촘아룬. 촘아룬에서 보이는 뷰가 이거겠구나 싶었던 강 건너 왓아룬. 비오는 거리와 비닐로 거의 터널을 만들던 사람들. 그 속을 오가던 여행자들. 어쩌면 사원과 왕궁보다 전세계에서 모인 여행자들의 발걸음과 그들의 취향에 맞춘 깨끗하고 비싼 식당 카페들이 현지인의 색과 나란히 서있는 이 거리가 진짜 방콕이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죽은 자들이 남긴 화려한 유산에 산 사람들의 온기가 흘러드는 곳.

왓포 앞 길, 유럽인들이 가득하던 카페.

잘못 들어간 골목의 촘아룬. (CLOSED) 

강건너 보이는 왓아룬. 해질녘엔 참 예쁘겠다.

한적해서 들어온 카페.

읽다가 울다가..

책읽는 나를 찍고 싶어 굳이 삼각대를 놓고 저러고 있었던 건 아무도 모르겠지. (리모컨은 오른손에)

커피가 꽤 괜찮았던 코끼리 커피에서 아아메로 잠시 땀을 식히고, 비오는 방콕의 거리에 다시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