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여기까지?
[20190807-20190811] 방콕, alone (2) 어서와 여기가 카오산이야. 본문
아침 카오산 맑음. 음악과 술과 넘치는 사람에 부슬비까지 내리던 지난 밤의 카오산은 어디로 간거니. 비이성적인 상태로 두드린 새벽의 스마트폰도 잊은 채 조식을 먹는다. 오 마이 갓. 이 가격에 조식이 훌륭했다ㅜ.ㅜ 어쩌면 나, 방콕이랑 잘 맞는지도. 하지만 돌이킬 수 없다. 나는 지난 밤에 너무 피곤했고, 끈적이는 방에 누웠는데 에어컨이 고장났단 소리에 정말 울뻔했으니까. 그리고 나 지난 몇개월 참 열심히 살았다고. 그러니 여름방학의 마지막 며칠, 괜찮은 호텔에 묵을 자격이 있어. 내가 시간이 없지 돈이 없냐. (
현지 시각 새벽 3시 15분, 스마트폰을 두드리다가 하얏트 플레이스 스쿰빗 호텔 킹베드룸을 질렀더라고. 게다가 내일 아침에 맘이 바뀌면 안돼! 무조건 옮길거야!! 라고 이를 갈며 취소 불가로 말이지ㅋㅋㅋ (
사람 사는 방콕은 개소리. 갑분호캉스를 시전합니다. 여러분 잠들기 전 새벽에 뭔가를 판단하거나 결정하지 마세요. 새벽은 비이성적이니까요ㅜㅜ 신난다. 출근의 이유가 생겼다. 일단 놀고! 카드값을 갚아 보자. 기왕 지른 거, 지난 밤의
호스텔 1층 식당에서 조식 쿠폰을 내밀면 아메리칸, 지중해식, 베지 중 고르라며 메뉴판을 준다. 스윽 메뉴판을 스캔해보니 아메리칸 140바트, 지중해식 120바트, 베지 100바트. 취향따윈 접고 어디까지나 자본주의의 논리로, 아메리칸을 외쳤다. ㅋㅋ 완벽한 써니사이드업 2개. 베이컨, 소세지, 감자에 따뜻한 빵까지 퍼펙했다. 에어컨 없는 야외 식탁에 뜨거운 김나는 커피만 옆에 덧붙이지 않았어도 좋아요 눌러줄 뻔. 사장님, 숙박업 접고 밥집해요 그냥. 여기가 맛집이었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태국어를 못해서 참았다. 다행이다.
조식을 먹고는 하얏트 체크인까지 시간도 애매하고 딱히 할일도 없으니 카오산과 람부뜨리 로드를 걸어 보기로 한다. 하나둘 문 열기 시작하는 가게들. 아침부터 길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현지인들. 익숙한 코끼리 가방과 티셔츠. 젓갈냄새 가득한 리어카와 길고양이. 문득, 정겨운 생각이 든다. 아, 맞다. 여기가 카오산이지.
끝에서 끝까지 얼마 되지 않는 길인데 구석구석 골목을 누비다 보니 한시간이 훌쩍 지났다. 비온 뒤 반짝이는 햇살에 슬슬 달아오르는 방콕의 아침. 덥네 역시,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다 수건을 빨아 널던 마사지사와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게 싱긋, 웃는 나에게 합장하며 사와디캅 하는 그녀. 나보다 열댓 살은 많아 보이는 눈빛이 어딘지 모르게 푸근했다. 아, 이건 영업용 미소가 아니야! 아닐거야! 이끌리듯 다가가 묻는다. 지금 마사지 받을 수 있나요? 우리나라에선 최저시급 남짓한 금액에 온 몸을 맡긴다. 노련함과 배려가 가득 담긴 손끝이 말했다. 어서와 많이 힘들었지. 그래 여기가 카오산이야.
도착한지 열두 시간만에 그랩을 불러 카오산을 떠나며 스쿰빗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역시 난 traveler를 꿈꾸는 tourist일 뿐인가. 에휴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될대로 되라지.
카오산 그린하우스의 조식. 진심.. 맛있었다 ㅠㅠ 양배추마저.
보리차에 수렴하는 커피만 없었어도 완벽했을 조식 ㅋㅋ
맑은 카오산의 아침.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사가던 제과점.
아침으로 먹는 걸까?
몇년 전 꼬마 곰돌이가 여기서 합장하며 사진을 찍었었지.
지난 밤의 피곤이 가시지 않은 듯한 메인 거리.
한 식료품점을 지나다가.
미니 오이인 줄 알았는데 태국 오이는 원래 작더라. 젓갈 같은 소스에 묶어 파는 게 인상적. 쌈장 찍어먹는 우리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아.. 저건. 웜? 인가요.
군고구마인 척 하는 바나나. 가까이만 가도 열기가 후끈한데 하루 종일 저걸 굽고 파는 분들 대단.
끈적이는 오일마사지를 싫어하는 내 초이스는 언제나 타이 트레디셔널 원 앤 하프 아우어-ㄹ
뜻밖의 대박집이었던 스무스 마사지. 나와서 구글 찾아보니 평점이 4.5 역시 갓구글의 리뷰는 틀리지 않는다.
점심은 카오산 3대 국수라는 나이소이. 갈비국수가 유명하다던데 그냥 포크누들을 시켰다. 부들부들하게 푹 익은 고기에 쌀국수 답지 않은 쫀득한 면발이 인상적이었으나 너무 더워서 3대 국숫집 나머지 둘은 안가기로 ㅋㅋ
익숙한 태국의 양념들
잠시후에 순삭될 아이.
음. 으응. ㅋㅋ
먹었으니 다시 걷자.
오올. 에어컨 없는 식당에서 뜨거운 국수를 먹고 나와 다시 걷다보니 카페가 막 나를 불렀다.
안들어갈 수가 없었던 라이크 이를리(ㅋㅋ)
응. 안들어갔어야 했따. 커피 졸라 맛없음 ㅠㅠ 분명히 에스프레소에 크림을 달랬는데 왜 아아메에 우유 거품을 얹어주는 건가요? ㅠㅠㅠ
국수값만큼 비싼 커피니까 사진이라도 찍는다. 깨알같이 에어컨 바람을 즐기면서.
서너시간 사이 몇번이나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던 카오산.
안녕. 이제 언니는 갈게. 언젠가, 또 만나자 카오산. 다신 보지 말자 그린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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