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여기까지?
또 다시 3월. 본문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새 아이들을 만났다. 1학년 담임. 오랜만에 만나는 1학년, 그것도 남녀 합반의 분위기에 적응하는 데는 한참 시간이 걸릴 거 같다. 아이들이 마냥 어리게만 느껴졌다.
학기초 학교에서 일괄 배부하는 기초조사서에는 희망 진로를 써내는 칸이 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의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듣고 싶어,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은 >이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열일곱 나이답게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답들에 흐뭇해하다가, '조기졸업 후 KAIST에 가서 삼성이나 현대에 입사해 연구원이 되고 싶다.'는 답에 멍해졌다. 대다수 내 동기들이 걸어온 길, 우리나라의 공부 좀 한다는 이공계 수재들이 늘 걷는 길.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자란 인재들이 대기업의 배를 불리는 일을 삶의 목표를 삼는 게 바람직한 일일까. 이 꿈이 이 아이의 머리에서 나온걸까. 프로그래머가 되어 구글에 입사하는게 꿈이라는 아이에게 구글을 씹어먹을만한 기업을 차리는 걸 꿈으로 가져야 할 나이라고 했더니 '선생님은 꿈이 뭐예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나에게 꿈을 묻는 학생, 참 오랜만이다.
일반계가 아닌 '과학계열'을 선택해서 들어온 아이들인 만큼, 진로를 좁혀나가기 전에 자신의 삶에 철학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 올 한해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가르쳐야 할 지 생각이 깊어지는 첫 주였다. 3년을 키워 내보낼 때, 이만하면 국가에 해가 되진 않겠다는 당당함 정도는 남아야 할텐데...
얼굴도 채 익히기 전, 다음주엔 꽃동네 체험학습을 간다. 마냥 아기같은 이 아이들의 눈에 꽃동네는 어떤 느낌일까. 어쩌다보니 매년 꽃동네를 가고 있는데 매번 그 느낌이 다르다. 나에게 올해 꽃동네는 또 어떤 느낌일까. 같은 삶이 두 번 없듯, 같은 아이들이 두 번 없음을 새삼 느낀다.
매년 같은 일을 반복 하는게 교사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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