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목적지인 에이칸도 젠린지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걷는다. 사실 금각사 앞에서 바로 버스를 타면 되는데 기타노 텐만구를 들르기 위해 일부러 3km 정도를 내려왔다 돌아가는 경로였다.

일관성있게 하던걸 하며 걷는다.

버스정류장. 버스의 도착시각을 알리는 시스템이 매우 아날로그감성 돋는다. 버스가 지나는 지점 문이 열리며 연두색이 보이는 방식ㅋㅋ 귀엽다.

버스를 무려 37분 탔다. 교토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느라 한바퀴 돌아야 했으므로. 덕분에 앉아서 시내구경... 은 뻥이고 지겨웠다.ㅡㅡㅋ

버스에서 내렸으니 걷자. 에이칸도 젠린지, 난젠지를 지나 산넨자카까지 쭉 걸을 생각.

하늘도 길도 예쁘고 좋았다.

길가다 마주친 n번째 다나카(田中)씨네 집.

신기한게 젠린지 가는 길이 마치 국립공원 내부처럼 잘 정돈된 산길이었는데 그 안에 학교가 있었다.

직업병 발동. 기웃기웃.

중고등학교가 함께 있는데 직업상 관상을 살짝 보는 내 눈에 매우 명문교 같았다. 아이들 교복 매무새와 책가방까지 통일된 자태, 언어는 몰라도 느껴지는 떠드는 소리의 뉘앙스. 하긴. 이런 경치좋은 명사찰을 끼고 학창시절을 보내면 엇나가기가 더 힘들겠다 싶은 생각이 들며 살짝 부러웠다.

젠린지 도착.
젠린지(禅林寺, 선림사), 에이칸도(永觀堂, 영관당) 젠린지 라고도 하는 이곳은 고려시대 불화인 아미타여래도가 소장된 곳이지만 실제로는 단풍이 절경이라 유명한 곳.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겐 입구에 블루보틀 커피가 있는 절.

입구에서

하던 걸 마저하고
돌아왔다. 다음을 기약하며.
시간도 애매했고, 추웠고, 무엇보다 계속 까불며 사진찍느라 배터리가 5프로였다. 긴급수혈할 곳이 필요.

절 입구 블루보틀로 갔다.

뎀.
한국인밖에 없다. 자리가 없고 콘센트도 없었다. 미련없이 돌아 나온다. 근데 저기 왜 유명한 건가요? 샌프란시스코 하버의 블루보틀은 찐한 라떼가 참 맛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슬쩍 곁눈으로 스캔하니 여긴 거의 드립을 마시는 분위기였다.
좋은곳도 많은데 굳이..라고 생각하며 퇴장(
웨이팅 세상 싫어함ㅋㅋ)

그래서 계속 걷는다. 젠린지에서 난젠지 가는 길도 참 좋았다. 공원도 지나고 마을도 지나고 묘지도 지나고(산자와 죽은자와 신이 함께 살아가는 일본)

배터리가 더는 못버틸 지경이 되어 식당에 들어갔다. 세트 메뉴를 하나 시키고 충전을 요청했는데 콘센트가 없단다. 못알아듣고 자리에 콘센트 없는건 알아요 가져가서 충전해주시면 아리가또입니다. 했는데..
이런 요청이 매우 많아서 이 일대 식당은 모두 충전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는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폰이 아예 꺼졌고, 이거 없음 사진도 지도도 아무것도 없어 여행을 할 수 없다고 세상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고메나사이..
섭섭했다. 카운터 옆에 바로 콘센트 있던데. 잠깐 좀 꽂아주지. 폰이 꺼진 채로 밥이 넘어갈 거 같지 않아 주문을 취소하고 나왔다..

배터리 사망 직전 마지막 사진.. 충전할 곳을 찾아 걷다보니 니넨자카까지 왔다. 스벅을 가면 충전할 수 있을텐데 폰이 없어 방향감각 상실. 걷다가 영업을 쉬는 점포 담벼락에 입간판용 콘센트가 삐죽 나와있길래 슬쩍 꽂았다. 이런 세상 성실하신 분들. 영업 쉬는 날엔 길가에 면한 콘센트 전원도 차단하나보다ㅠ 충전 실패.

걷다보니 큰 길가에 나왔다. 그리고 은혜로운 카페 발견! 모던한 느낌에 노트북 하는 유럽인들이 창으로 보이는 걸로 봐서 충전잭이 반드시 있을것이다!! 생각하고 입장. 충전용 usb포트가 있었다ㅜㅜㅜㅜㅜ
커피를 마실 기분이 아니므로
흑맥주. 응?
전기세 드려야하니 도시락 추가. 세상 짭조롬하니 맥주 한잔이 더 땡겼으나
비싸서 오늘의 여행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참는다.
충전하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까 거절당한 식당 주인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주문을 취소하고 나오는데 계속해서 미안하다던 주인. 원칙을 정하고 지키는 사람들한테 무리한 부탁을 한건 나였다. 급하니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미안해야 하는 건 내 쪽. 생각이 짧았다. 주문을 취소하며 죄송하다고는 했지만 섭섭함이 내 표정에 다 보였을게 틀림없다. 다음에는.. 이란 게 있을까. 이래서 여행의 인연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부끄러웠다.
산넨자카와 니넨자카 상점은 6시면 문을 닫는데 현재 시각 5시15분이므로, 배터리 50퍼만 채우고 다시 일어선다.

올라가는 길

해질무렵의 니넨자카

일본 어디에나 있는 동구리공화국(토토로샵)

한때는 교토인의 정신적 상징이었다는데 지금은 주택가와 상점에 둘러져 자태가 오히려 낯설던 호칸지(야사카데라) 5층 목탑. 고구려 도래인이 세운 절과 신사, 탑이지만 이젠 그저 일본 문화재.

여기서도 하던걸 해본다.

걸어내려오니 해질 무렵. 길건너 저 카페가 나에게 배터리 50퍼 어치 은혜를 베푼 곳.

야사카 신사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밤엔 삼각대를 함부로 쓰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등뒤에 보이는 길이 기온거리.

신사에 들어가서 하던걸 마저한다.

야사카 신사. 마쓰리 때가 아니어도 한번쯤 들러보기 좋은 위치와 정취.

그리고 기온거리 스벅에서 마차라떼를 마신다. 우리나라 그린티 라떼와는 완전 다른 맛이어서 일본에 오면 꼭 먹는 메뉴. 은근 배불러 사이즈는 꼭 숏.

기온거리에서 음주를 즐기기엔 호텔이 넘 멀다. 교토역 근처 호텔까지. 걷는다.

2박 3일 여행의 둘쨋날 밤이 아쉬워 계속 걸었다.

여전히 인도를 향한 의자들.

처음엔 구글맵을 보고 걷다가, 교토타워가 보이는 순간 타워를 보고 걷는다. 교토의 지식인들은 타워 건립을 반대했다지만, 그래서 한때 <교토타워 내 호텔에 묵는 관광객은 환영하지 않습니다.> 라는 문구가 사찰 입구에 붙기도 했다지만, 내 눈에 교토타워는 나쁘지 않았다. 도시경관을 해칠까 하는 그들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마구 어울려 있는 곳이 또 교토니까.

타워가 가까워진다. 기왕 온거 교토타워 아래까지 걸었다. (숙소는 교토역 하치조 출구였으므로 타워 반대편이지만 그냥 걸었다)

는 아니고. 사실 펍을 검색하다가 내 사랑 에비수! 가 무려 펍으로 운영된단 걸 보고 여기 오려고 걸었다ㅋㅋ 위치는 교토타워 바로 뒤!

아. 혼자오지 말았어야 했다ㅠ 무려 여덟 종류의 에비수를 한 잔 밖에 맛보지 못했다ㅠ (샘플러는 없음ㅠ 장사할 줄 모르는 것들!)

그래도 혼자 잘논다. 등 뒤에서 귀여운 알바가 한국의 셀카 어플 기술력에 놀라며 내 폰과 얼굴을 번갈아 본 건 기분탓이다. ㅡㅡㅋ
숙소로 가자.

어마어마하게 큰 교토역을 관통하면 호텔!!

인데 관통하는 길 찾기 왜 이리 어렵나요ㅡㅠ 의도하지 않게 교토역 옥상 타워 전망대에 와버렸다. 뜻밖의 전망 득.
오늘 오미쿠지의 예언대로 대길 맞네 어예 
뚫고 나왔다. 숙소 바로 앞 아반티 몰. 순간 오늘이 마지막 밤이네 생각하며 몰 2층 돈키호테로 간다. 딱히 살건 없지만 난 한국인 관광객이므로.

헐. 그렇게 찾던 니신 누들 똠양꿍맛이 깔렸다!!!!! 오키나와엔 없더니 다 여기 있었구나ㅠ

와인안주로 좋은 치즈과자도 겟.
(와인은 안먹잖아ㅋㅋ 응?)
컵라면과 치즈과자만 달랑 산 한국인은 나 뿐이었다. 이번 여행의 쇼핑은 딱 저게 끝ㅋㅋ
호텔 1층 로손이 보이면 도착이지.

32789걸음을 걸었는데 천킬로칼로리!!
안먹고 안걷는게 낫다는 교훈을 얻으며 하루를 마무리...
하려고 했는데

충전케이블이 안보인다ㅜㅜ usb잭만 꽂아 충전하고 어디다 흘렸나보다. 호텔에 기본 비치된 아이도 아이폰과 옛 삼성폰 잭 뿐이었다. ㅜㅜ
정갈하게 세수를 마친 얼굴로 로비에 가니 프론트 직원이 흠칫 놀라며 맞이했다. 나 망했어. 이거 충전잭 있을까 징징대니까 꺼내줬다. 다행이다ㅠ 체크아웃때 꼭 반납하라고 덧붙인다. 당연하지 내가 지금 쌩얼이라 글치 낼 아침에 화장하면 충전잭 들고 튈 사람처럼 생기진 않았어.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일어가 짧아 간단히 한다. 혼또니 아리가또 고자이마스ㅜㅜㅜ

낼 10시 체크아웃인데 그 뒤엔 어쩌지 그냥 들고 튈까 잠시 고민했으나 깡시골도 아니고 주변에 편의점, 돈키호테, 다이소, 이온몰, 빅카메라까지 널린 교토역인데 글로벌 삼성폰 충전잭 하나 못구할까 싶어 그냥 발뻗고 자기로 한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한다.
긴 하루였다.
오야스미나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