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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여기까지?

장기재직휴가, DAY3 본문

여행

장기재직휴가, DAY3

딸공 2026. 9. 16. 21:04

남편 출장 이슈로 잠시 대전에 다녀오기로 한 날, 대전에 갈거란 말에 그럼 꼭 아침 일찍 나오라던 아빠는 아홉시가 넘어가도록 잠에서 깨지 않았다. (나는 무려 여섯시 반에 병실에 도착했는데) 가족실 안마기에 드러누웠다가 병동 서가에 꽂힌 책을 훑다가 잠든 아빠한테 괜히 말을 걸다가 테라스에 나와 하늘을 보다가 하는데, 병동 수녀님이 밖에 나가서 맛있는 거라도 좀 먹고 오라고 하신다. (많이 심심해보였나) 그러게 오늘도 날씨가 너무 좋네요, 정액권 지른게 아까워 주차장에 굳이 세워두었던 모찌를 끌고 평일 오전의 코스트코를 간다. (맛있는 거 먹으러 코슷코를 왜가냐고 묻지 말자 그냥 하바티 치즈를 사다두고 싶었을 뿐) 
나의 의식은 평일 오전의 한산하고 여유로운 코스트코를 상상했지만, 착각이었다. 평일 오전에 장을 볼 수 있는 사람이 휴가낸 직장인 뿐일 거라는 건 어디까지나 내 상상력의 부재였고, 심지어 추석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라 주차장 진입부터 헬이었다. (저녁 시간에 산책삼아 걸어올 때가 좋았다) 주차하는데 30분, 필요한 물건만 쏙쏙 골라담는데 15분, 계산하는데 15분, 아주 야무지게 기가 빨린 채 오전이 가버렸다. 
병실에 돌아와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2를 절반쯤 읽도록 잠만 자고 있는 아빠. 할 수 없이 간병사에게 인사를 전해달라하고 일어난다. 대전까지 가는 길은 머니까. 오늘의 아빠님은 여기까지만 봅시다. 

오전 여섯시 반의 동대구로. 27년 전에는 매일 아침 이 시각에 이 길을 걸어 학교에 갔지.
병원 1층 스벅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손바닥보다 작은 케이크가 1400Kcal라서 기절. 나 저거 앉은 자리에서 바로 끝낼 수 있는데 -_-
금일 조식은 시그니처코르타도에 살짝 데운 올리브빵으로 하겠습니다
나는 너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겠다 라는 성경 말씀에 한로로가 떠오른 건 내가 불경한 거겠지;
유일하게 호스피스병동에만 허락된 테라스인 줄 알았는데 잘 보니 같은 층에 의국들이 모여있었다. 이 공간은 환자를 위한 게 아닐 지도.
하지만 보호자도 즐길 수 있지 하늘과 바람과 벤치 정도는.
정액권의 쓸모를 키우기 위해 주차장 방치된 나의 모찌님

 
대전까지 가는 길은 머니까. 여행자 답게 '대구, 대형 카페, 브런치 카페, 현재 영업 중'으로 검색을 하고 경로 상에 위치한 적당한 곳을 찍는다. 조금이라도 괜찮아 보이는 곳은 주말마다 미어터지니까, 평일의 한산함을 즐겨야 해! 

카페 '소소래' 수국 정원이 예쁜 샌드위치 맛집이라고 했다(알고리즘이)

는 물론 나의 착각이었다. 아니 다들 일 안하세요? 평일인데 주차장이 왜 꽉 차 있는 거냐고요. 

수국 정원이 예쁘긴 했는데요
실내는 소리가 울려 너무 너무 시끄러웠습니다. (아니 평일인데 왜 다들 여기서 이러고 계신 거예요?!)

발리에서 사온 드림캐쳐가 언제 저것만 남았냐 드림캐쳐 사러 발리 다시 가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빈 테이블에 가방을 던져두고 

이번주에 먹은 식사 중 가장 비싼 한끼였다. 샌드위치+케이크+핸드드립 커피, 27000원. 재구매는 없을 맛. 사진 한장 건진걸로 만족하시죠.

샌드위치를 먹을까 케이크를 먹을까 따위의 고민은 물론 하지 않은 채 둘 다 주문한다. (저 돈 벌어요) 핸드드립을 기다리며 카운터 앞에 서 있다가 네이버 리뷰이벤트로 쿠키도 챙겼다. (돈 벌어도 리뷰이벤트는 못 참습니다) 

수국을 보니 갑자기 격하게 제주에 가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제주를 걸은게 2025년 2월인 게 말이 되냐.

샌드위치는 너무 딱딱하고 케이크는 너무 달고 핸드드립 커피는 너무 밍밍해서 참 다행이었다. 이 좋은 날씨에 이 좋은 공간에 음식까지 완벽했다면 평일에 이런데서 친구만나 수다떠는 삶이 너무 부러워 쓰러졌을 테니까. 사진을 찍기는 참 좋은 카페네요. 전 이만 대전으로 가보겠습니다.
네비에 '집'을 찍고 출발했는데 칠곡 IC 앞에서 좌회전 신호 대기 중에 익숙한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아니 신전떡볶이 1호점은 분명히 경명여고 앞에 있는데 저 로고가 왜 여기 있는 거죠. 신전뮤지엄이라고요? 제가 아무리 엽떡과 신전 대결에서는 100:0으로 엽떡을 고를 인간이지만 떡친자로서 신전뮤지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데요. 비상깜빡이를 켜고 슬금슬금.. 저 우회전 좀 할게요. 

존재감 확실한 신전 로고가 딱

의식의 흐름대로 신전뮤지엄에 들어와 벌임.

평일인데 어딜가나 왜이렇게 바글바글하냐 했는데 드디어 한산한 곳을 찾았다. 신전뮤지엄 주차장에 나밖에 없음. 여기 망했나요
하하하하하하 이게 뭐야 진짜 신전떡볶이 박물관이잖아
목걸이형 티켓은 기념품이니 반납 안 하셔도 돼요, 라고 웃으며 안내해주는 직원님께 저 이거 안 받을래요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목에 걸 용기도 없었음 -_-


이런델 유료 입장료 만원까지 내고 들어오는 정신나간 인간이 대체 누구냐. 접니다. 

지점이 생길때마다 명예의 전당에 기록한다는데 그럼 모든 지점이 다 있는 거잖아 여길 대체 왜 돈주고 보는거야 라고 생각하며 우리 동네 지점부터 찾아봄 (대체 왜) 너님은 유료로 기업홍보관을 관람하고 계십니다. 하하하하하

사장님 실명제임

나만의 컵떡볶이 만들기 체험이라는데 컵에 그림을 그려 넣는 예술혼까진 뽐내지 못했다. 하지만 티켓에 체험료가 포함이라니 안 받을 수는 없잖아, 소심하게 매운맛주세요- 하고 컵떡볶이 하나 겟  

하지만 순한맛과 매운맛을 선별하는 로봇이 고장났다고 직원이 손으로 바꿔줌 (이게 뭐야 ㅋㅋㅋ) 그래도 컵떡볶이 하나 얻었으니 티켓값에 4천원은 지워드리겠습니다. 

입장료에 시식도 포함이라고 한다. (8천원 지워드리죠) 하지만 전 10분 전에 육포식감 샌드위치랑 설탕 때려부은 케이크를 먹고 왔는데요, 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어차피 포장도 안 된다니까 먹고 가던지 버리고 가던지 둘 중에 하나만 하라는 소리잖아. 

시식은 순한 맛만 가능함. 나라면 시식은 매운 맛으로 주고 음료를 같이 팔텐데 (장사할 마음이 없어보였다.)

물론 전 먹고 갑니다. 

그와중에 기프트샵까지 있음
조명까지 신전 로고인 디테일
팔지도 않을 걸 왜 걸어 두시는 거죠
뇌절 ..
이번 주에 가본 곳 중 가장 한산하네요.

 

신전 그라운드라고 써있던 옥상 공간은 그냥 직원용 복지 시설인 것 같음.

 
샌드위치와 케이크와 떡볶이가 함께한 긴 점심식사를 마치고, 혈당스파이크와 싸우며 대전에 오니 이미 저녁시간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설쳤지만 아빠랑 한마디도 못 해본 날. 그럴려고 그런 건 아닌데 완벽한 여행자 모드였던 오늘. 아빠의 시간은 한없이 느리게 가는데, 가을이 오는 속도는 그것보다 조금 빠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의 휴가는 이제 2/5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