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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를 잡으러 가야겠어. 본문

딸공

구미호를 잡으러 가야겠어.

딸공 2025. 4. 2. 17:22

매주 금요일마다 엽떡을 시켜 맥주를 마실거라던 당찬 다짐은 지키지 못했다. 매년 3월 셋째주 주말엔 귀신같이 몸살에 한번 시달리는데 어쩐 일인지 올해의 몸살은 주말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소리도 안 나오고 후각도 미각도 완전 잃었는데 코로나인가 싶어 검사를 해도 코로나는 아닌 상태로 보름이 지났고, 어제 아침에서야 교무실에 내려둔 커피에서 흐릿한 커피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매년 3월 셋째주에 찾아오는 몸살이 학부모 총회 후유증인지 그저 개학맞이 푸닥거리인지 모르겠지만(둘이 같은 건가), 회복력이 떨어진 건 분명하다. 4월을 맞이할 준비는 아직인 채로 4월이 와버렸다.

감기약에 쩔어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사이 ‘폭삭 속았수다’를 봤다. 초반엔 그저 양관식과 오애순이 철없이 예쁘고 제주가 좋아서 봤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오애순이 너무 내 엄마같고, 양금명이 너무 나 같아서 엉엉 울고 말았다. 12부쯤 봤을 땐 너무 힘들어 그만 봐야겠다 싶었는데 결국 다 봐버렸다. 브런치에 쓴 ‘내 이름은 김딸공’ 시절의 나와 너무 닮아있는 양금명의 모습에, 다들 저러고 사는건가 아니면 특별히 지랄맞은 스토리라 화제가 되는건가 궁금했을 뿐이다. 오애순이 ‘우리 금명이는 친정 있어’ 하던 말이 두고두고 귓가에 남았다.

3월 한달을 지나는 동안 대화 중에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우리 학교‘가 충남고가 되었다. 한 차시 분량에 얼마를 가르쳐야 할까 감이 없어서 조금 허둥댔지만 이제 ’적당함‘도 알아가고 있고, 모든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여전히 마음이 쓰이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보는 법도 배우고 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종례신문을 시작했다. (남학교에서 종례신문을 쓰는게 가능한가 망설였지만 일단 열었고, 3회까지 발행했다.)

지난주 도서관 담당선생님으로부터 전체 메세지가 왔다. 누군가 도서관 컴퓨터 바탕화면에 고 노무현대통령의 합성 사진을 깔아두고 갔다고, 학생들에게 교육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트라우마처럼 마음 속 스위치가 딸깍 켜졌다. 아, 여기도 시작인가, 하고. 하지만 나는 반톡에 전달해달라는 내용만 전하고 너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정도를 가볍게 한마디 덧붙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종례신문에도 비슷한 잔소리를 한번 더 담았지만 더 깊이는 묻지 않았다. 너희가 아니면 좋겠다, 라는 말 뒤에는 ‘만약 너희들 중 하나라면, 그건 어쩔 수 없다.’가 숨어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것을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 것,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그 너머는 잊는 것, 나는 그 정도의 밸런스를 유지하기로 했다.

목이 너무 아파서 생전 쓰지 않던 마이크를 꺼내들었는데, 단지 마이크를 손에 잡은 것 만으로도 괜찮냐고 걱정해주는 아이들이 있었다. 손틈새로 빠져나가는 모래에 온 마음을 쓰는 사이 내 손에 남아있는 모래도 놓쳐버리는 어리석은 짓은 더 하지 않을 것이다. 내 교실에는 여전히 예쁜 아이들이 가득하고, 나는 그거면 충분하다. 그래서 3월의 충남고는, 그리고 나는, 꽤 괜찮았다.

이번 주말엔 엽떡에 에일맥주를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내일 밤엔 오랜만에 구미호를 사냥하러 씨유를 가야겠다. (그나저나 요즘 구미호 왜 이렇게 사기 힘듦?)


지난 주말에 한참 핫했던 것. 아깽이 시절의 레오를 그려달랬더니 세상 팔자좋은 아깽이로 변신시켜줬다. 다소곳한 두 발이 킬포였는데 그걸 못 살림. 내 고양이는 역시 실물이 더 예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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