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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개학 앞에서, 학생들에게. 본문

딸공

온라인 개학 앞에서, 학생들에게.

딸공 2020. 4. 1. 16:41


3월의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 교육부는 휴업 연장과 함께 온라인 개학이라는 사상 초유의 결정을 발표했다. 태블릿 PC와 웹캠 가격이 하루 사이에 20~30퍼센트 올랐고, 메가스터디와 강남에듀 같은 온라인 교육 컨텐츠의 주가가 급상승했다. 맞벌이 부부는 어떻게 하냐, 온라인 수업이면 라이브로 진행하느냐, 가정에 PC가 한 대뿐인데 출석 체크는 어찌 하느냐와 같은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이탈리아에서는 어제까지 누적 사망자가 1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숫자의 집단 죽음이라고도 한다. 조기를 게양하며 묵념하는 이탈리아 시민들의 소식을 TV로 전해 들으며 세계적인 감염병 대 유행의 상황, 팬데믹을 실감한다. 모니터 앞에서 휴업의 하루를 보내는 우리는 느끼지 못하는 사이, 세계는 그야말로 전쟁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표된 온라인 개학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이제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떻게 생활해야 할까. 자, 이제 한 번 생각해보자.

초중등교육법에서는 법정 수업일수를 명시하고 있다. 필요에 따라 10% 이내에서 감축 운영할 수 있지만 그 범위를 넘어서면 현행법으로는 유급이 될 수 밖에 없다. 즉, 이대로 휴업을 계속 연장하면 집단 유급이 된다는 소리. 일각에서는 이참에 9월 개학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하지만 쉽지 않은 이야기다. 결국 이 상태가 지속될 경우 집단 유급을 피할 수 있는 길이 현재로서는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온라인 개학이라는 결정은 평소와 똑같은 교육환경을 가정에서 랜선으로 받아먹게 해주겠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신박한 결정! 이 아니라, 집단 유급 사태만큼은 피하고 보자, 라는 정부의 고육지책이라고 보는 게 마땅하다.

그럼 이제 너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차라리 개학하지 이게 뭐냐고 불평만 할 것인가? 이참에 푸욱 쉬자는 생각으로 새벽까지 게임하고 정오가 넘어 일어나는 생활을 계속할 것인가? 공부를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계속 우울한 생각만 할 것인가?

나는 담임으로서 너희들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첫 번째는 이 상황이 이제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마음 아프고 안타깝지만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잠시 쉬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접고,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학습하고 생활하는 상태를 하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이자.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등교 개학을 할 수 있는 날이 왔을 때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이 상황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생활해야 한다. 두 번째는 전 세계적인 아픔의 시간에 진지하게 임했으면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고, 내 주변엔 확진자가 없다고 상황을 가벼이 여기고 쉽게 행동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전 세계적으로 85만명이 감염되었고 그 중 42,145명이 사망했다. 전쟁상황이 아니고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죽음의 숫자 앞에서 함께 아파하고 마음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하나뿐인 지구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너희들이 살아가고 이끌어나갈 세상의 이야기니까.

그래서 나는 너희들에게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온라인 개학에 맞춰, 우리 같이 개학하자. 매일 아침 7시 반에 일어나고, 8시 반에는 책상에 앉는 생활 스터디를 해보면 어떨까? 희망자를 모아서 단톡을 하나 만들어 학교 시종에 맞게 학습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담임님께서 관리할 예정. 희망자는 가볍게 저요! 하면 되고, 희망하지 않는 사람은 물구나무 선 채로 저는 절대 네버 결코 못 하겠습니다!! 라고 세 번 외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뒤에 링크를 보내도록 하자. 어디까지나 자율 참여지만 신기하게 1반 전원이 참여하게 된다면 단톡 따로 팔 필요 없이 그냥 반톡에서 하면 되겠네 🙂 이제는 가정에서의 생활도 정말 개학 상황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야.

두 번째, 지금은 특수 상황이다. 온라인 개학이라니, 너희들만큼이나 교사인 나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 열심히 수업을 촬영하고 동영상을 만들어 올리겠지만 사설 인강으로 눈이 높아진 너희들에게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을 거다. 강의 하나에 수십 명이 붙어 촬영하고 편집하는 사설 인강과 학교의 컨텐츠를 비교하지 말자. 이건 누가 더 잘하느냐 경쟁의 상황이 아니라 집단 유급을 막고 전 세계적 위기상황을 함께 극복해나가야 하는 전시 상황이니까.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관계라고 생각한다. 누가 더 잘 가르치고 화려한 영상을 보여 주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너와 나, 우리와 너희 사이의 관계일 거라고. 사설 인강이나 EBS 강사들이 알지 못하는 너희를, 나는, 우리 교사들은 잘 알지. 서로가 서로를 믿고 모두 처음 겪는 이 상황을 함께 헤쳐나가 줄 것을 기대한다. 너희들만큼이나 이 상황을 맞이하는 나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라는 걸 이해해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줬으면 좋겠다. 나는 너희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계속 찾고, 해나갈 거다. 그리고 최선을 다할 거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러니 너희들도 학교와 어른들을 믿고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줬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줬으면 좋겠다. 하루에 적어도 30분 이상은 뉴스를 찾아보고,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라. 가짜와 진짜를 구분해 보고, 자신만의 주장도 가졌으면 좋겠다. 단순히 팩트를 찾아보는 일에서 나아가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는 일도, 지금 이 시기에 꼭 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세상을 위해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한번 쯤은 고민해줬으면 좋겠다.

위기는 또한 기회라고 한다. 우리의 만남을 랜선으로 밖에 지속할 수 없음이 안타깝지만 등교 개학을 할 수 있는 날까지 카톡으로, 신문으로, 다른 여러 방법으로 우리 계속 만나자.

1반, 벌써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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