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Archives
Recent Comments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oday
Total
관리 메뉴

... 어쩌다 여기까지?

진로탐색 본문

딸공

진로탐색

딸공 2018. 7. 18. 18:10

 세기 말, 뉴 밀레니엄의 시작을 앞 둔 고등학교 시절, 내 꿈은 유전공학자였다. 유전공학자가 뭘 하는 직업인지 명확한 그림도 없으면서 굳이 유전공학자를 장래희망이라고 정한 이유는 21세기 유망한 직종이라며 많이 언급되는 것들 가운데 꽤나 있어빌리티가 높은 분야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고 아직도 생명과학연구원은 여전히 유망직종이다. 대체 언제쯤 연구원이 미래 말고 현재 괜찮은 직종이 되려는지. 시간이 흘러도 직업세계의 값은 제자리 걸음인가 보다. 혹자는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4차 산업혁명이 곧 온다고 한다. 어찌되었건 산업세계의 판도가 한번쯤 뒤집어지기는 할 모양인데, 그래서 또 미래사회의 유망직종이라는 것들이 리스트를 달고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데 대체 그 직업군들을 예상한 미래학자들은 아직 살아는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렇게 전망 좋다는 직업 정보는 늘 진로 선택의 기로에 선 학생들을 혼란스럽게만 한다. 잘하고 좋아하는 것이 뚜렷하다면 어차피 미래의 직업 전망따위 쿨하게 무시하고 진로를 택할텐데 대부분의 학생들을 그런 걸 잘 모른다. 그걸 학교 탓, 교육 탓으로 돌리지만 사실 십대의 나이에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아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어쨌든 세기 말을 살고 있던 열여덟의 나는, 실체 없는 유망직종, 유전공학자를 꿈꿨다. BK21, 지금은 완전 잊혀진 새천년 정부의 야심찬 프로젝트 브레인 코리아 21 사업의 일환으로 꽤나 많은 대학들이 정부 지원금을 타내기 위해 단일계열 모집을 하기 시작할 때였다. 입학할 때 전공을 정하는 게 아니라 1년의 기초 수업을 들은 후에 전공을 정하게 되는 단일계열 모집으로 공대에 진학했고, 1년 뒤 생명과학이 아닌 기계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내 진로선택은 어디서부터 엉켰던 걸까? 기계공학 학부 수업도 학점도 나쁘지 않았고, 잠시나마 발 담갔던 유체실험랩 석사과정도 나쁘지 않았는데. 선택한다는 것은 포기한다는 것과 동치. 선택과 포기를 거듭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엔지니어가 아닌 교사였다. 교사로서의 역할에 만족하는가, 에 대해 아직까지는 그렇다. 라고 답할 수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 주머니에 든 돈을 꺼내게 만들거나, 재벌의 배를 불려주기 위한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단 질문이 교사로서의 삶이 아니라 그 역할 자체에 한정지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그렇다. 아이들은 분명 예쁘고, 가르치는 보람도 있는데 나는 늘 주변인처럼 학교에 흠뻑 젖어들지 못하고 자꾸 옆을 돌아본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걸치고 있는 사람처럼 어색하게 웃으면서.

 

 평생 직장이라는 게 있긴 할까? 열여덟 살 철모르는 아이들에게 진로가 뭐냐고 물을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꿈을 물어야 한다. 안타깝지만 나는 아직도. 진로탐색이 끝나지 않았다.

'딸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사 패씽, 교사는 적폐인가?  (0) 2018.07.31
교사에게 내년은 없다.  (0) 2018.07.29
Day1_ 학기말 딜레마  (2) 2018.07.17
글을 쓴다.  (0) 2018.07.15
정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0) 2018.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