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여기까지?
Day1_ 학기말 딜레마 본문
잠시 뒤척이는 순간에 확인하는 스마트폰 불빛을 시작으로 날밤을 샌 게 벌써 몇번인지 모르겠다며 거실에 폰을 두고 들어왔다. 그래서 알람소리를 못들었고, 늦잠을 잤다. 나의 첫번째 날은 지각과 함께 시작했다.
기말고사가 끝난 방학 전의 학교는 항상 풀어지기 마련이지만, 교과데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교과가 행사를 진행하는 신탄진고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잡을 수가 없다. 평소에 못다한 다양한 수업을 시도해보자는 의도는 좋았는데 생기부 기록이라는 학교현장의 숙제와 맞물리면 뭐든 과해진다. 밸런스 잡기는 늘 실패하고 만다. 정규 수업으로 진도를 나가려면 의아한 눈빛과 각종 질문공세를 진압할 정도의 전투력은 장착해야 하는 여기에서, 나는 수업을 한다. 손틈 사이로 흩어지는 모래알 같은 아이들을 달래고 또 달래면서.
모처럼 상담을 한다. 한 달에 한 번은 눈빛 보고 얘기해야지 마음 먹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실제로 정신이 없어서 늘 마음만 앞서간다. 마냥 밝고 즐거운 줄 알았던 속내에서 진지한 고민들이 쏟아진다. 담임이랍시고 상담을 하지만 그래봐야 몇년이나 더 살았다고.. 해줄 수 있는 조언도 별로 없이 안쓰러운 마음에 그저 듣고만 있는다. 진로고민, 관계고민, 그맘때 고민들이 다 뻔할 것 같은데도 열아홉명 아이들의 고민이 모두 결이 다르다. 듣고 있다가 그저 한마디, 믿는다. 라고 한다. 해준 것도 없이 고맙다는 인사가 돌아올 땐 미안함과 기특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아 애써 고개를 돌린다.
치기어린 열정에 마음만 앞서가는 교사가 되지 말아야지. 마음만 앞서간 교사가 제풀에 지치면 나만 보고 내 그늘에 숨어 따라온 아이들은 고스란히 상처 받을 수 밖에 없는 걸. 해를 거듭하며 깊어지지 않고 닳아지기만 할까 두려운 내가 조금이나마 교사로서 성장하고 있다면, 그건 온전히 아이들 덕분이다. 참 주는 거 없이 늘 받기만 하는 관계다. 그런데 늘 고맙단 말을 듣고 산다. 인삿값이라고 할려면 한번 더 돌아보고 한번 더 안아줘야하는데. 상처받을까 두려워 거리를 둔다. 참 비겁한 마음인데 아이들은 알까.
오로지 아이들을 믿는다. 항상 기대치보다 더 큰 사랑을 보여준 건,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었으니까. 1학기말 상담을 마치며 나는 또 준 것보다 많이 배우고 많이 받는다. 아이들은 매번 대책없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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