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여기까지?
정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본문
잰걸음으로, 조금만 보폭을 줄이거나 가볍게 디디면 될텐데
땅만 바라보며 푹푹 내딪는게 습관인 나는 매번 대책없이 발이 빠지고 만다.
세련되고 가볍게 떠나보내고, 우연한 마주침에 싱긋 웃어주는 정도의 리듬이, 나에겐 없다.
뜻밖의 대면에 당황하고. 미숙한 인사를 남기고. 후회한다.
정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라고 누가 그랬다.
굳이 과부족을 따지자면, 결핍보단 낫지 않은가요? 항변해보지만
관계에 있어서는. 적절한 시간과 너무 많다는 그 '정'이라는 것의 싱크로가 지금처럼 맞지 않을 때.
결핍이 오히려 낫겠네요. 라고 수긍할 수 밖에 없다.
뒷모습에 비치는 작은 한숨에도 마음이 덜컹한다.
제 때에 정을 거두지 못해서, 가볍게 디디는 법을 익히지 못해서, 아니 처음부터 정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은 자라서 '다시는 미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가장 큰 기쁨인 어른'이 되고.
나는 그 뒤통수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가르친다는 게 도대체 뭘까 지난 시간을 복기한다.
1박 2일짜리 교직원 워크숍에 전날 교보에서 집어 온 정재승 교수님 신간을 담아갔다.
디아밸. 이라는 단어에 뜬금없이 눈물이 난 건 밸런스가 완전히 깨졌다는 증거겠지?
이번 학기에도 나는, 여전히 가볍게 걷기에 실패했고, 또 발이 푹푹 빠질 것이고, 또 아플 예정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지금 괜찮지 않다는 걸 굳이 숨길 필요있는가 하는 뻔뻔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너희를 바라보는게 전혀 괜찮지 않다. 너무 아프고, 너무 속상하다.
세련되고 가벼운 관계의 기술을 익히기에 나는 여전히 정이 너무 많다. 라고 그냥 말해버린다.
어설프게 흉내를 내다가 상냥한 얼굴로 상흔 가득한 관계를 만들까 두렵다.
그래서 나는 늘 가볍지 못하고, 그래서 자꾸 더 깊어지고, 그래서 내려놓지를 못한다.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대책없이 최선을 다하며 그렇게 흘러간다.
매번 아이들이 자꾸 대책없이 예쁘다.
나무같은 교사가 되겠다 다짐한 지 한 학기,
나는 또 실패했다.
'딸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Day1_ 학기말 딜레마 (2) | 2018.07.17 |
---|---|
글을 쓴다. (0) | 2018.07.15 |
4반에서 온 편지 (0) | 2018.04.30 |
2학년 4반, 힐링캠프 (0) | 2018.04.22 |
2017년의 마지막 달에. (0) | 2017.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