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Nagoya
원래는 제주에 가려고 했다. 3월 4일부터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 잔 적 없이 논문을 읽고 썼으니 한 타임 쉴 때가 되었다. 하지만 여권을 갱신했으니까. 그리고 여권 갱신일에 외출했다가 망했으니까. 새로 만든 여권을 들고 다시 일본으로 외출을 해보자, 가 되어버렸다.
[의식의 흐름]
- 제주 왕복하면 22만원? 뎀. 이 돈 주고 제주는 아니지.
- 청주에서 갈 수 있는 곳이 제주 말고 뭐가 있지?
- 삿포로, 도쿄, 오사카, 오키나와, 타이페이, 클락, 다낭..
- 주말에 갈만한 곳 중에 안 가본 가까운 데가 나고야뿐이잖아.
이렇게, 나의 행선지는 갑자기 나고야가 되었다.
조금 문제라면, 티케팅할 때는 정시퇴근 후 17:40 청주발 비행기 탑승이 무리인 걸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과, 이걸 인지하고 3시 조퇴를 달아둔 뒤에야 출발 지연 연락을 받았다는 점 뿐이다. 결국 난 아까운 나의 연가를 반 시간이나 더 버리고 3시 반에 학교를 빠져나왔다.
또 하나의 문제라면, 코로나 이후 일본을 한 번도 안 간데다 코로나 직전에도 한동안 NOJAPAN 바람으로 발길을 안 했었어서 일본이 무려 6년만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한때는 내 지갑에 항상 있었던 키티 이코카의 행방을 알 수 없었고, 결국 출발 전까지도 찾아내지 못했다.
또또 하나의 문제라면, 목요일 저녁에 논문계획발표가 있었기 때문에 항공 외에 뭘 알아보고 예약할 여유가 없었다는 점이다. 대충 카드 하나 들고가서 ATM 인출하고, 나머진 뭐 어캐 되겠지, 라는 생각. 그러니까 츄부국제공항 입국장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내가 나고야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무사히 공항에 내렸고, 남들이 사전에 준비한 QR을 꺼내서 입국할 때, 당당하고 클래식하게 자필입국심사서를 작성해서 입국도 마쳤다. 한글은 물론 영어도 지원 안 되던 공항철도 티케팅도 아무나 붙잡고 대충 물어 했고, 그 와중에 운 좋게 타이밍 딱 맞는 뮤스카이를 올라탔다. 공항철도에서 지하철로 환승할 때 아주 약간 헤매긴 했지만, 암튼 무사히 호텔에 도착했다.
그리고 내일부터 이틀 동안은 무작정 걷고 먹고 마실 예정이다. 무려 보조배터리도 안 들고 왔기 때문에, 검색따윈 그냥 안 할 예정. 나고야 어디에 뭐가 있는지, 뭐가 유명하고 뭐가 좋은지, 그런 건 하나도 모르지만, 대충 어떻게든 다 될 것이다.
그러니 이건 여행이라기엔 조금 그렇고, 그냥 퇴근길에 잠시 나고야에 들렀다? 정도로 해두자. 암튼, 잘 놀다 갈 거란 뜻이다. 적당히 사소한 것들에 가진 운을 탈탈 써가면서, 언제나 그랬듯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