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공

요즘 먹고 사는 이야기

딸공 2018. 10. 5. 21:00
현미와 귀리 톳을 넣고 갓 지은 밥에 날달걀을 노른자만 터트려 섞고 낫또를 한 팩 올려 젓가락으로 휘젓는다. 최대한 담백하게 겨자와 조미 간장은 생략. 모든게 완벽한데 시간이 충분치 않아 여유가 없는 게 불만이다. 출근하는 주제에 아침생활이 여유있길 바라는 건 사치지. 10분의 시간에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새벽 필라테스 후의 아침메뉴다.

출근길에 허둥대지 않기 위해 점심 도시락은 전날 저녁설거지 후에 준비한다. 삶은계란과 올리브, 약간의 샐러드를 채우는 데 10분이면 충분하다. 급식을 먹지 않은지 5개월차, 학생들이 묻기 시작했다. 왜 밥을 따로 먹냐고. (참 일찍도 묻는다;) 평화로운 점심시간의 여유가 첫 이유였는데, 함께 도시락을 먹자는 사람이 늘면서 여유는 사라졌다. 이젠 급식밥의 자극적인 맛이 전혀 그립지 않은게 이유. (오늘같이 갑자기 찬바람이 불며 비오는 날엔 뜨끈한 국물이 갑자기 그립긴 하더라)

온전히 나를 위해 밥을 챙겨본 게 얼마만인지 요즘 도시락을 준비하며 새삼 깨닫는다. 두 아이를 키우며 거의 모든 끼니를 외식없이 해결하면서도 나의 노력과 정성은 대부분 가족들의 취향에만 맞춰져 있었다는 걸.

큰 녀석을 데리고 성장판 검사하러 을지대병원에 갔다가 스쳐지나는 환자들의 모습에서 문득 그립고 두려운 향을 느꼈다. 어린시절 나의 희망진로에서 의사라는 직종을 완전히 삭제해 버리게 만들었던 그 지겹고 두려운 공기를. 하지만 너무 긴 시간을 그 공간에서 보낸 탓에 이제 그리움과 분리할 수 없게 되어버린 그 두려운 공기의 무게를.

<70세이상 사망법안, 가결>이라는 책을 읽었다. 70세가 되면 모든 사람이 안락사한다는 해괴한 가정. 당연히 미친소리지만, 나이듦과 아픔이 생활이 되면 결코 아름다울 수 없음을 아는 사람은 쉽게 작가를 미쳤다고 욕하지 못한다. 들어서는 문조차 쉽게 밀어열지 못할 듯한 병원 특유의 끈적하고 무거운 공기를 느낄때마다, 나는 조금만 방심하면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 초입에 선 사람처럼 긴장한다. 새벽 필라테스와 아침밥 그리고 온전히 나를 위한 도시락만이 마치 두렵고 그립던 그 곳으로부터 나를 꺼내줄 유일한 구원인 양. 엄마가 처음 아프기 시작했던 나이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요즘의 나는, 사실 조금 두렵다.

밥을 같이 안 먹으니 대화할 시간이 없다며 몇몇 친한 선생님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 맛있는거 사주면 낯선 사람도 쉽게 따라가는 데 아직 사람들이 날 잘 모른다. ) 밥을 같이 안먹어 멀어질 정도라면 애초에 우린 별로 친하지 않은 게 아닐까요? 라는 말은 속으로 삼킨다. 사실은 나도 여유로움이 약간 외롭기 시작하려던 참이니까.

이 가을, 아무래도 이 곳에서 마지막 가을.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오늘 밤엔 통밀빵에 밤잼을 발라 얼그레이밀크티랑 같이 야식을 먹어야겠다. 빵빵하게 들어있던 밤잼 튜브가 어느새 딱 한 스푼 남았다. 달달했던 시간만큼이나 달달한 것들은 금새 사라져버린다.

요즘 나는 이렇게 먹고 산다.